<226>제2부 薔薇戰爭제4장 捲土重來 :임은 기어이 물을 건너시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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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대왕 김명으로부터 10만 관군의 대장군으로 임명된 김흔은 그 길로 즉시 말을 타고 달구벌로 급파되었다.

남편 김흔이 전쟁터로 나간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정명부인은 멀리서 말을 타고 출전하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아아, 임은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이할 것인가."

정명부인은 남편 김흔이 이 전쟁에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설혹 전쟁에 이겨 살아서 돌아온다 하더라도 생불여사(生不如死), 살아도 살아있는 목숨이 아니고, 이름과 명예를 더럽혔으므로 살아도 이미 죽은 목숨과 같은 산송장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날 밤 정명부인은 홀로 공후(??)를 타면서 노래 불렀다.

강원도 상원사의 범종에 조각되어 있는 공후는 현명(絃鳴)악기인데, 정명부인은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

임은 기어이 물을 건너시네(公竟渡河).

임은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墮河而死).

가신 임을 어찌할 것인가(當奈公何)."

정명부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부른 노래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란 노래로 이를 '공후인(??引)'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의 뱃사공 곽리자고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배를 저어 가는데, 머리가 하얗게 센 미친 사람이 술병을 들고 흐르는 강물을 건너고 있었다. 강가에서는 그의 아내가 뒤를 따르며 말렸지만 끝내 물에 빠져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강가에서 땅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통곡하였다. 이 노래가 공무도하가였다. 노래를 끝낸 후 아내도 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는데, 이 광경을 목격한 곽리자고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 여옥(玉)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노래를 들려주었다.

뱃사공인 진졸(津卒)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은 공후를 안고 노래를 부르니 듣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는 노래인 것이다. 출전하는 남편을 마치 건너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는 것으로 비유하고 마침내 남편이 물에 빠져죽어 버릴 것임을 탄식한 정명부인의 예감은 그로부터 며칠 뒤 그대로 적중된다.

어쨌든 이 때의 기록이 사기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민애왕 2년 정월 19일.

김양의 군이 달구벌의 땅에 이르렀다. 이에 왕은 김양군의 닥침을 듣고 아찬 김대흔을 대장군에 임명하고 대아찬 윤린·의훈 등을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싸우도록 하였다."

양군의 군사가 최후의 결전을 벌인 곳은 달구화현. 이를 달벌성이라고 부른다.

관군은 공산성을 중심으로 진영을 펼치고 있었고 동평군은 연귀산(山)을 배후로 진영을 펼치고 있었는데 관군의 대장군으로 김흔이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김양이 전해들은 것은 진중에서 김우징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 소식을 듣자 김양은 갑자기 허공을 바라보면서 세 번을 크게 웃었다.

"어찌하여 대장군은 크게 웃으십니까."

김우징이 묻자 김양은 술을 마시며 대답하였다.

"예부터 밭갈이는 농부에게 시키고 바느질은 아낙네에게 맡기는 법이라 하였습니다. 하물며 전쟁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태흔 형은 글만 읽을 줄 알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려 본 적 없는 백면서생(白面書生)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태흔은 저의 종부형이나이다. 그보다도."

김양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마시던 술잔을 소리가 나도록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하였다.

"태흔 형이 적군의 대장군이라면 싸우나마나 반드시 이 전쟁은 우리가 승리를 거둘 수 있음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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