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경제 되돌릴 순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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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증시가 하락세를 지속하고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국제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대외경제, 특히 미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높아졌다. 첫째는 자본시장의 완전개방으로 이미 우리나라 전체 상장회사 주식의 약 40%, 그리고 우량회사 주식의 60% 이상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소유로 넘어가 있다.

국제경제 불확실성 커져

자본시장의 자유화는 무역자유화보다 훨씬 더 국제경제 환경변화에 대한 취약성을 높인다. 이는 단순히 자본의 유출입 양이 확대되는 직접적인 채널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외국자본이 국내증시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소위 부(富)의 효과를 통해 국내 소비지출과 경기변화를 주도하는 간접적 영향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이와 더불어 지난 4~5년간 우리산업구조의 변화, 즉 수출뿐 아니라 증시에서의 정보기술산업의 비중확대로 이들의 수출 및 주가가 해외경제, 특히 미국 경제 및 미국 증시의 움직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의 장·단기 전망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다. 가장 큰 불확실성은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과 대폭적인 경상수지 적자가 어떻게 조정되느냐에 달려 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확대되어온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아시아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미국 외의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액 1조7천억달러 중 일본·중국·한국·대만·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액만 1조2천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가계부문대출 확대는 주로 이들 국가로부터의 투자에 의해 조달해 왔으나 과거의 국제경제사로 볼 때 이것이 마냥 계속될 수는 없으며, 언제라도 추세가 반전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아시아 국가 통화들과 미국 달러화의 환율 재조정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미 개방된 경제를 되돌릴 수는 없다. 개방은 또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미 국내증시에서의 외국인 투자자들의 감시는 기업의 내부거래라든가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견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은 국제경제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견딜 수 있는 경제체질을 갖추고 또한 시의 적절한 경제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의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아직도 많은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첫째, 임금수준이 전반적으로 너무 높다. 그동안 저금리와 크게 절하된 환율 덕택에 기업들이 수익성을 개선하고 수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금리가 오르고 환율이 절상돼간다면 고임금구조는 다시 기업들의 수익성과 경쟁력을 압박할 것이다.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도 마찬가지다. 지난 1년 사이에 이는 오히려 거꾸로 조정되어 앞으로 임금상승 압력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회생이 의문시되는 기업들이 대량의 금융자금을 삼키고 있다. 경제정책 운용에는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다시 단기적인 시각이 주도하는 듯한 인상이 짙다.

경제 체질 개선에 주력을

지금과 같은 국제경제환경 아래서는 올해 높은 성장률을 달성하는 것보다 경제체질 개선에 주력해 장래 일어나게 될 국제금융 흐름의 반전과 환율의 조정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한국인의 잠재력에 대해 다시 많은 것을 느낀다. 백여년 전 이 땅을 네 차례나 구석구석 방문하고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여행기를 남긴 비숍 여사는 당시 우리나라의 참담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민은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민족이라고 적고 있다. 정치나 경제나 어떤 계기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외환위기가 외부 힘에 의한 계기를 제공했다면 월드컵은 우리 국민의 단결성과 자발성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완전개방을 받아들인 이상 증시나 경기의 기복이 해외경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맞서려 하지 말고 이에 견딜 수 있는 튼튼한 구조와 체질을 갖춘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 이 시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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