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다시 주저앉나" 세계가 긴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미국 경제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나타내면서 하반기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 경제가 생각보다 큰 폭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는 전망에 따라 우리나라의 수출 회복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두세달 전만 해도 올해 경제성장률이 6~7%에 이를 것이라며 경제정책의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으나 최근들어 '일단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 경기불안이 불러온 원화 환율 하락=미국 경제의 불안은 당장 원화 환율의 하락(원화가치 절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24일 달러당 1천2백13.5원까지 떨어졌다.

이는 국내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달러당 원화 환율이 1백원 떨어질 때마다 국내 기업의 채산성은 7조~8조원씩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기업의 수익성 악화는 설비투자와 고용 감소로 이어져 결국은 국내경기가 위축된다.

◇탄력적인 정책 대응 필요=전문가들은 전망이 불투명 할수록 탄력적인 경기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굿모닝투신운용 강신우 상무는 "그동안 내수 주도로 회복된 경기가 2분기부터는 수출 회복에 힘입어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무래도 차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반기 수출이 차질을 빚을 것에 대비한 정책대응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현재로선 '유보적'입장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은행 이성태 부총재보는 "외부환경이 나빠질수록 '내실'을 다져야 한다"며 가계대출 급증 등 경제의 거품 요인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대외 여건이 불안정하고 설비투자가 아직 본격적으로 살아나지 않은 만큼 현재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탄력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차진용·고현곤 기자

미국 경제를 놓고 엇갈리던 전망이 최근 들어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고 있다. 거시경제 지표상으론 여전히 별로 나쁜 편이 아니다. 그러나 개별 기업들의 실적이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증시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뉴욕발 악재는 여의도 증시도 썰렁하게 만들고 있다.

더불어 달러화 가치도 맥을 못추고 있다. 현재 달러화 시세는 유로화에 대해 2년2개월만에 최저치로 밀린 상태다.일부 전문가들은 '1달러=1유로'시대도 멀지 않았다고 말한다.

◇미국 경제 무엇이 취약점인가=국제금융시장에서 일고 있는 미국 경제 회의론은 기업들의 수익성이 탄탄하지 않다는 평가에 기인한다.

올 1분기 미국의 성장률은 예상 외로 높은 5.6%를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이 수치 발표 이후 주가와 달러시세는 꾸준한 내림세를 보였다. 기업들의 성장여력이 미미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실제로 1분기의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S&P 5백대 기업의 순이익은 12%나 감소했다.

수익이 회복되지 않으니 소비도,고용도 회복이 더디다.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1분기 성장은 정부지출 확대·재고조정에 힘입은 것으로, 소비 및 기업 설비투자가 동반되지 않아 향후 경기회복세에 의구심이 깊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엔론사태 이후 계속 불거지고 있는 부정회계 스캔들도 악재다. 미국 기업의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주가도 속락했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로치는 고실업·소비부진을 들어 향후 미국 경기가 W자형의 이중침체(더블딥)를 경험할 수도 있다고 점치고 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도 이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매력 잃고 있는 달러화=주가하락은 달러약세로 이어졌다. 월가의 투자자금이 유럽 등지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자금이 유입되지 않으니 미국으로선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기 어려워졌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4.1%였던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올해는 5% 수준(5천억달러)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기록적인 수준으로 늘고 있다.

미 정부는 겉으로는 '강한 달러'정책을 고수하고 있지만 달러 약세를 어느 정도 용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경제에도 나쁜 영향=대미 의존도가 높은 일본·아시아·중남미 등에 일단 비상이 걸렸다. 수출 호조에 힘입어 모처럼 불황 탈출을 꿈꾸고 있는 일본은 최근의 달러 약세가 발목을 잡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국·중국 등도 미국 경기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멕시코의 페소화는 2년래 최저치로 밀렸으며,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남미국가들의 경제사정도 악화하고 있다.

이재훈 기자

뉴욕발 외풍으로 24일 종합주가지수가 한때 750선 근처까지 밀리자 여의도 증권가에선 "이러다 대세상승 흐름마저 끊기는 것 아니냐"는 탄식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행히 지수는 760선을 회복했다.

미국 증시가 침체의 수렁에 빠지면서 국내 주가에 대한 눈높이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올 연말이면 지수 1,000을 넘길 것이라고 장담했던 국내외 증권사들은 속속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UBS워버그증권은 24일 "당분간 종합지수는 750~850 범위 안에서 오르내림을 거듭하다 4분기에 950 정도까지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투신증권도 이날 "연말 지수 목표치를 950~1,000에서 50포인트 내린 900~950으로 수정한다"고 밝혔다.

HSBC증권 이점자 서울지점장은 "최근 한국증시의 약세는 미국 상황에 근본원인이 있다"며 "미국시장이 잠잠해지길 일단 기다려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대세하락 국면으로까지 빠져들지는 않을 것으로 진단한다.

굿모닝투신운용 강신우 상무는 "한·미 증시가 다른 것은 한국 기업들은 수익이 계속 좋아지는 반면 미국 기업들은 좀처럼 개선조짐이 없다는 점"이라며 "주가는 결국 기업실적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강상무는 "미 증시만 안정을 되찾으면 국내 주가는 다시 차별적인 상승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키움닷컴증권 안동원 상무도 "미국경제의 침체로 국제투자 자본이 미국시장을 이탈하면 투자 대안의 하나로 한국시장을 주목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광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