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마음의 벽 허문 월드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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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른 22일 저녁. 1천여명의 동포가 몰려나온 도쿄(東京) 신주쿠(新宿)의 쇼쿠안(職安)거리와 오쿠보(大久保)거리는 붉은색 물결로 뒤덮였다.

그 중에는 일본인들도 적지 않았다. 일본 축구 응원단인 '울트라 닛폰'의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일장기와 태극기를 흔드는 일본인들도 있었다. 야마모토(山本)라는 한 40대 일본인은 "한국의 승리는 한·일 공동의 승리"라고 좋아했다. 일본방송협회(NHK)는 23일 두 시간 동안 월드컵 하이라이트를 방영하면서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멘트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일본인들에게서 기대 이상의 성원과 축하를 받다 보니 이것이 속마음에서 우러난 것인지, 의례적인 것인지 어리둥절해 하는 한국인들도 있다. 일본인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속마음'(혼네)과 '겉표현'(다테마에)에 차이가 큰 국민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 좀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는 게 대다수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의견이다. 한 한국 외교관은 "이탈리아전에서 승리하던 날 평소 잘 모르던 일본인 이웃이 맥주를 들고 와 축하인사를 건넸을 때 한·일 공동 월드컵의 성공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재일동포 3세 김양수(41)씨는 "얼굴에 태극기 스티커를 붙인 일본 친구들과 함께 응원하면서 마음으로 친해졌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친구들과 함께 한국팀을 응원했다는 오쓰카 도시키(28)는 "일본팀이 패한 후 대다수 일본인은 한국팀에 기대를 걸고 있다"면서 "월드컵은 한·일 젊은이들의 우호 증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국민의 응원 열기와 한국팀의 투혼 또한 일본인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한국에 무관심하거나 한국을 무시하던 일부 일본인도 한국민의 단결력·끈기·저력·투지 등을 확인하면서 한국을 새롭게 보고 있다.

요코하마 경기장에서 열리는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한 한국팀을 빨간 티셔츠를 입은 '울트라 닛폰'이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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