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기 용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중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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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00년 4월 3일 첫 삽을 뜨기 시작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사업이 3년째를 맞았다. 창군 이래 처음으로 추진된 이 사업을 위해 지금까지 대학 교수, 전문 발굴팀 12명을 포함해 연인원 2만명 이상의 인력과 장비가 투입됐다. 그 결과 6백69구의 유해를 발굴했고, 그 가운데 44구의 신원을 확인했다. 18구는 유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유해 발굴 사업은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도 구천을 맴도는 호국영령들에 대한 후손들의 최소한 도리이자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하지만 아직도 10만여 호국용사들이 우리 주변의 어딘가에 버려져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미국은 1백50년 전부터 대통령 직속기구로 'CILHI'라는 유해 발굴부대를 두고 있다. 여기에는 학자·현역 군인·민간인 등 1백69명의 전문요원들이 참여해 유해 탐색 및 발굴,감식 업무를 하고 있다.

이들은 '조국은 결코 당신을 잊지 않는다'는 기치 아래 '조국을 위해 숨진 사람의 유해가 있는 곳이라면 우리가 가지 않는 곳이 없고, 시간이 얼마 걸리든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얼마 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실종된 미국 유해 한 구가 CILHI 부대원에 의해 발굴됐을 때 미국의 모든 방송은 이를 생중계했고 주요 신문은 톱기사로 다뤘다.

특히 "위대한 조국을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유가족의 인터뷰는 이것이 바로 오늘의 미국을 만든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우리나라도 CILHI부대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늦게나마 육군의 유해 발굴사업을 시작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민족적 자존의식을 높이고 조국을 위해 희생한 국민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의미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후방 장병들로 하여금 유사시 과감하게 몸을 던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조국이 그대들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확신을 그들에게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무 책임자로서, 혹시나 하고 이곳저곳 발굴 현장을 쫓아다니며 애태우는 유가족과 한줌의 유해 가루를 어루만지며 오열하는 가족을 대하면서 이 사업이 너무 늦게 시작됐다는 아쉬움이 크다. 또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느끼게 하는 안타까운 사연들도 많다. 다리뼈에 파편이 박힌 채 백골이 되어 나타난 선배 전우님. 물구덩이 속에서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죽어 50년을 견디어 온 선배님들.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으면서 흩어져 버린 선배님들의 유해를 거둘 때면 온몸에 전율을 느끼고 가슴이 저려온다.

유해 발굴은 전쟁 50주년을 계기로 시작해 2003년까지 마치게 돼 있는 시한부 사업이다. 그러나 10만여 호국용사의 시신을 모두 찾을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해야 하며 범정부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체계적인 사업추진을 위해서는 민·관·군으로 전문 발굴단을 발족해야 한다. 또 과감하게 예산을 투자하고 호국영령의 예우에 관한 법적 문제를 보완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전국민의 성원과 관심이 있어야 하며 언론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호국영령 문제를 강건너 불보듯 팽개쳐 놓은 나라와 국민의 장래란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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