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으로 하나된 한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18일 열린 월드컵 16강 한국-이탈리아전(戰). 연장 후반 이탈리아의 골문이 열리자 50여만명의 군중이 운집한 서울시청앞은 순식간에 지축을 뒤흔드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1997년 말 경제위기 이후 한국인들의 가슴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털어버리고도 남을 만한 열기였다. 한국사회에 팽배한 세대간 대립과 같은 사회적 갈등도 응원의 대합창 속에 말끔히 씻겨내려가는 듯했다.

18일 밤 시청앞에서 서울시민들이 외치는 "대-한민국"의 대합창을 들으며 나는 15년 전을 떠올렸다. 87년 6월. 바로 이곳 서울시청앞은 지금처럼 수십만명의 군중에 의해 점령돼 있었다. '독재타도'를 외치는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투쟁. 급기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를 약속했고, 군사정권에 종지부를 찍었다. 수백만명의 군중이 전국의 주요 거리를 가득 메운 것은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처음이다.

한국의 이번 월드컵 열기는 응원단 '붉은 악마'가 전국 규모의 응원조직으로 성장하면서 이끌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응원단의 상징인 붉은 티셔츠는 7백만장 이상 팔려나갔다. 개인주의가 강한 한국에서 거리의 모든 사람이 똑같은 붉은 셔츠를 입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경기장에서도 거리에서도 한국인들의 응원은 '붉은 악마'의 구호에 맞춰 질서정연하게 이뤄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한 경제개혁이 시작된 이후 한국사회에는 개인주의와 이로 인한 괴리감이 만연했다. 이런 가운데 시작된 월드컵 열기는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치열한 경쟁으로 억압돼 있던 '국민화합'에 대한 잠재적 기대에 월드컵이 불을 붙인 격이다.

의식의 변화는 한국의 고질적인 노사대립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월드컵 16강전이 펼쳐진 지난 18일 현대자동차 노사의 임금 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난관에 봉착해 있던 현대자동차의 노사협상은 대규모 파업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였었다.

한국팀 응원의 상징이 된 '붉은색'에 대한 세대간의 미묘한 의식차도 '월드컵 열기'에 묻혀버렸다. 한국의 중장년층에게 '붉은 색'은 과거 공산주의의 상징이었다.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민국'을 합창하는 모습에 일체감을 느끼면서도 "거리에 넘쳐나는 붉은 티셔츠에는 소름이 돋는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견해도 "레드 콤플렉스는 이제 사라졌다"는 사회 분위기에 희석되고 있다. 한국의 일관된 국시(國是)는 북한에 승리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경제적으로는 북한을 능가했다. 그리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념적인 국가의식은 약해지고, 대신 같은 민족인 북한에 대한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월드컵 열기'는 정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13일 실시된 지방선거는 한국 역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노무현 대통령후보를 옹립한 민주당이 선거에서 참패하고, 정몽준 한국축구협회 회장의 대선 출마설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은 모두 월드컵이 빚어낸 정치적 변화다. 한국의 지역간·세대간·계층간 또 정치적 대립과 갈등은 한꺼풀 벗겨보면 그대로일지 모른다. 쉽게 달궈지고 쉽게 식어버리는 한국사회에서 '국민화합'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붉은 티셔츠를 입은 한국인들은 일제히 이렇게 대답한다. "이번엔 4강이다. 우리는 함께 응원할 뿐이다."

정리=박소영 기자

사외(社外)기고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