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바우두 왼발 동점골 천재적 감각 빛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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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미리 보는 결승전으로 세계 축구팬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브라질-잉글랜드 경기는 호나우디뉴의 원맨쇼에 의해 승부가 갈렸다.

양팀은 분명한 색깔 차이를 드러내며 세계 축구팬을 흥분시키는 명승부를 펼쳤다. 잉글랜드는 예선부터 펼친 전통적인 선(先)수비·후(後)기습의 틀로 브라질전에 나섰고, 브라질은 공격적인 플레이로 맞불을 놓았다.

결과는 브라질이 2-1로 승리했지만 승리의 기회는 잉글랜드에 먼저 찾아갔다. 잉글랜드는 전반 23분 브라질 수비수 루시우의 실수로 얻은 결정적인 찬스에서 오언이 골을 뽑아내며 전체적인 경기의 흐름을 자신들이 의도했던 전략의 틀로 브라질을 끌고 갈 수 있었다.

이 틀이 깨진 것은 전반 종료 직전 호나우디뉴의 현란한 개인기에 의해 히바우두가 터뜨린 동점골 때문이었다. 호나우디뉴의 현란한 발동작과 타이밍을 맞춘 절묘한 패스가 히바우두의 왼발에 연결된 것이다. 만약 이 동점골이 터지지 않고 전반이 1-0 상태로 마감됐다면 승부는 잉글랜드쪽으로 기울 수 있었던 분위기와 상황이었다.

동점골의 장면을 곱씹어보면 히바우두의 천재성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호나우디뉴가 잉글랜드 철벽 중앙수비를 깨고 패스해준 볼을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 45도 각도에서 왼발로 감아차 동점골을 뽑은 것은 왼발잡이의 특성 때문이었다.

만약 그 위치에서 오른발잡이가 슈팅했다면 잉글랜드 시먼 골키퍼의 수비 각도에 막혀 걸렸을 것이다. 왼발로 휘어찼기 때문에 슈팅각을 크게 해 시먼 골키퍼의 방어각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 동점골로 잉글랜드는 자신들이 먼저 잡았던 승리의 분위기를 잃었고, 브라질은 침체된 분위기에 불을 붙여 상승세로 끌고가는 전환점이 됐다.

이런 분위기는 후반 경기력에 그대로 반영됐다. 경기 흐름을 주도한 것은 브라질이었다. 히바우두·호나우두·카를루스·카푸·호나우디뉴 등 전술적 핵심 멤버들은 잉글랜드의 베컴·오언·헤스키 등을 압도하며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다.

잉글랜드의 결정적인 패인은 또 있었다. 골키퍼 시먼이 전반 문전 로빙볼을 처리하다 공중에서 동료선수와 함께 떨어지며 허리를 삐끗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호나우디뉴의 후반 5분 결승 프리킥골이 터질 때 그대로 나타났다. 평범한 위치와 각도에서 노련하고 경험 많은 시먼답지 않게 낙하지점 판단 미스와 위치선정 난조로 '만세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시먼의 부상으로 경기가 수분간 중단됐을 때, 고민하던 스벤 고란 에릭손 잉글랜드 감독이 골키퍼를 바꿨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잉글랜드도 동점골을 터뜨릴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다. 후반 12분 호나우디뉴가 퇴장당해 10명이 뛰는 브라질을 상대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급격한 체력 저하와 브라질의 철저한 딜레이 플레이에 말려 이 기회조차 살리지 못하고 무너졌다.

조별리그 첫경기인 터키전부터 8강전인 잉글랜드전까지 브라질의 경기를 되돌아보면 점차 팀컨디션이 상승하고 있고, 우승후보로서의 위용을 갖춰가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잉글랜드의 패배는 유럽축구가 남미축구를 이기기 위해서는 체력과 조직만으로는 불가능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잉글랜드의 탈락은 베컴·오언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충격이겠지만 호나우두·히바우두의 절정의 컨디션과 창조적인 플레이는 이들 팬에게도 충분한 대안이 될 만했다.

브라질은 사실상의 결승전이란 8강전에서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줬다.

<중앙일보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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