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韓 사이도 이상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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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이 마련 중인 '부패청산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노무현 대통령후보와 한화갑 대표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부패청산은 8·8 재·보선 준비를 위해 민주당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권력 비리와 일정한 선을 그어야만 등 돌린 민심을 되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많은 당직자는 "6·13 지방선거 패배도 부패청산 의지가 미흡한 것으로 비춰진 데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盧후보는 20일 MBC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당의 입장에 대해 "'우리는 부정부패와 관계없다'가 아니고 '책임지고 철저히 수사해 모든 것을 밝히고 재발방지 시스템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산의지를 적극적으로 강조한 발언이다.

문제는 이럴 경우 김대중(DJ)대통령과 그 가족 및 측근들에 대한 공격이 불가피해진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韓대표는 당의 진로 문제를 다룰 당발전특위 위원장을 후보 측에서 맡아달라고 제의했지만 盧후보는 고사했다. "盧후보가 직접 DJ와 절연(絶緣)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당이 나서주길 바라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결국 韓대표가 위원장을 맡게 됐다.

'DJ와의 단절'문제도 비슷한 양상이다. 盧후보는 여러번 "DJ를 밟고 가는 식의 차별화는 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盧후보와 가까운 쇄신파 의원들의 얘기는 다르다. 이들은 ▶대통령 장남 김홍일(金弘一)의원 탈당▶박지원(朴智元)대통령 비서실장의 자진사퇴▶아태재단 해체▶김방림(金芳林)의원의 검찰 자진출두 등을 요구하고 있다.

韓대표는 21일 신기남 최고위원이 김홍일 의원의 탈당 문제를 당에 공식 제의하겠다고 말한 데 대해 "개인 문제를 그런 식으로 해결하면 안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盧후보 진영에서 나오는 '차별화''청산'주장에 대해서는 "호남 민심이 등 돌린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고 말해 거부감을 분명히 드러냈다고 한다. 동교동 구파의 김옥두(金玉斗)의원은 "대통령을 헐뜯는 일이 있으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김홍일 의원도 "내가 왜 탈당해야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사정은 점점 복잡해져 간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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