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집 'op.4' 발표 박 정 현 "한번 맘껏 내질러봤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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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9면

한 국 여성 리듬앤드블루스(R&B) 가수의 선두 주자 박정현이 새 앨범 'op.4'를 발표했다. '유 민 에브리싱 투 미'로 사랑받았던 2000년의 3집 이후 2년 만에 발표한 네번째 정규 앨범이다.

올해 스물여섯살. 이 아담한 체구의 여가수는 새 앨범에서 그동안의 이미지를 벗어나 디바로 비상(飛上)하기 위한 과감한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창법과 음악색 실험="한번도 제 입으로 '나는 R&B 가수다'라고 얘기해본 적이 없어요. 여러 장르의 음악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다양한 음악을 하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이제 네번째 앨범인데 여기서도 지금까지와 똑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가수로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소 낯설더라도 팬들에게 음악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앨범 출시를 이틀 앞둔 지난 13일 오후 만난 박정현은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담은 앨범 발매를 앞둔 흥분과 기대로 상당히 들떠있었다.

'꿈에'를 대표곡으로 한 새 앨범은 모두 열세곡을 담았다. 프로듀서는 015B 출신의 정석원으로,정석원은 박정현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프로듀서로서 진면목을 보여준 듯 하다.

새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박정현이 그동안 줄곧 유지해온 R&B 창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창법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첫번째 트랙 '플라스틱 플라워(상사병)'는 박정현의 보컬 실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새 앨범의 고갱이 같은 곡이다. 인더스트리얼록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이 고급스런 노래에서 박정현은 '꺾기 테크닉'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 R&B 여가수들의 천편일률적인 창법을 버리고 자신의 음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보컬을 선보였다. 박정현이 다이도나 셀린 디옹처럼 특정 장르의 한계를 넘어 목소리로 승부하는 디바의 길을 갈 수 있을지 주목되는 곡이다.

대표곡 '꿈에'는 국악기 소금 반주와 코러스가 돋보이며 '사랑이 올까요''미장원에서' 등은 서정적인 발라드다. 이수영을 스타로 키워낸 작곡가 MGR(박용찬)가 만든 '떨쳐'는 특히 공연장에서 돋보일 듯한 힘있는 곡이다. 박정현은 노래마다 조금씩 다른 창법으로 보컬의 매력을 최대한 살렸다.

◇"음악이 나의 길"=박정현은 해외동포 2세다. 미국 LA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친이 목사로 일하는 교회에서 어려서부터 노래와 피아노 연주를 하며 자연스럽게 실력을 길렀고 중·고교 시절에는 각종 행사에 단골로 초대됐다고 한다.

고교 시절 뮤지컬에 자주 출연한 그녀는 연출과 연기를 공부하기 위해 1994년 UCLA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피스'가 들어있는 첫 앨범을 낸 것은 98년. 그녀는 "그때는 한국에 잠깐 머물 줄 알았다"며 웃었다. 음반을 내기로 결심한 동기도 재미있다. "스물다섯살이 되기 전에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어요. 음반을 내느라 노력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데뷔 앨범에 이어 '편지할게요''몽중인'이 들어있는 99년의 2집,2000년의 3집이 모두 40만장 가까운 판매를 기록하며 확실한 스타로 자리잡았지만 그녀는 '1백% 전업 가수'는 아닌 듯 보였다. 3집을 낸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컬럼비아대에 진학해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앞으로 폭넓은 공부를 하는 데 도움이 될 듯 해서"라는 게 영문학을 택한 이유다. 지금은 새 앨범 때문에 휴학 중이지만 꼭 졸업할 것이라는 게 그녀의 말이다. "어머님은 누구보다 열렬한 제 팬이시지만 아직도 '이제 그만 놀고 공부해서 취직해야지'라는 말씀도 하세요. 하하."

하지만 "앞으로 할 수 있는 한 노래를 계속할 것"이라는 게 그녀의 다짐이다. 박정현은 "작곡이나 프로듀싱보다는 노래를 하는 가수로 남겠다"며 "다만 아름다운 가사는 계속 쓰고 싶다"고 말했다.

◇월드컵은 위기이자 기회=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는 한국 음반 업계에 월드컵은 커다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앨범 판매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그래서 월드컵이 한창 열기를 뿜고 있는 이때 박정현이 과감히 새 앨범을 발매한 것은 일종의 도전에 가깝고 그 결과가 주목된다.

월드컵은 새 앨범을 낸 박정현에게 위기이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월드컵 공식 음반에 브라운 아이즈·케미스트리·소웰루 등 한국·일본 양국의 인기 R&B 뮤지션들과 함께 부른 노래를 수록하고 개막식과 폐막식 기념 공연 무대에도 오르면서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지명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박정현은 "기회가 되면 물론 일본에서도 활동할 것"이라고 웃어보였다.

글=최재희·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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