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격리 차원으로만 생각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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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에이즈에 감염된 여성이 수년 간 전남 여수시에서 수백 명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나 많은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더구나 그녀가 상대한 상당수의 남성들이 콘돔을 끼지 않고 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에이즈 관리의 허술함을 지적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에이즈 감염자를 격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 기회에 에이즈 관리를 맡고 있는 정부책임자로서 우리나라의 에이즈 실태와 왜 문제가 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전세계의 에이즈 감염자는 6천2백만명으로 집계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 3월까지 1천6백86명의 감염자가 확인됐다. 이들 중 97%는 성접촉에 의해 감염됐다. 주목되는 것은 과거에는 동성 간의 성접촉으로 감염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이성 간의 성 접촉이 주요 감염경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앞으로는 에이즈가 무서운 속도로 번질 우려가 크다. 실제로 지난해 감염자 수는 전년에 비해 52%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여수의 에이즈 감염 여성은 상대 남성에게 콘돔을 착용하라고 권했는 데도 대부분이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위험천만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에이즈를 예방하고 퇴치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에이즈에 노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고, 감염됐을 때 남에게 쉽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위험집단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에이즈검사를 하고 있다. 새로운 감염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보건소 직원이 그를 비밀리에 접촉해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타인과 성접촉을 하지 않도록 하는 등 보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에게 치료비의 대부분을 지원하고 있다. 또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홍보에 많은 예산을 쏟고 있다. 완전히 낫게 해주는 에이즈 치료제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철저하게 관리한다 해도 에이즈 관리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개개인이다. 우리가 자유분방한 행동을 하면서 최소한의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에이즈가 퍼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다.

또 한가지 걱정스러운 게 있다. 우리나라에서 에이즈 감염자로 밝혀지면 그날부터 가족·친구는 물론 사회의 질시와 냉대가 시작돼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이처럼 가족·친구·사회가 그들을 감싸안지 못하는 것도 에이즈 확산의 한 요인이다. 에이즈는 악수나 포옹에 의해서는 옮겨지지 않는다. 설령 감염됐다 해도 5~10년 간은 정상인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 에이즈 감염자들이 일상생활을 꿋꿋하게 할 수 있게 배려해 준다면 그들도 이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고, 에이즈 감염도 그만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에이즈에 감염돼 숨진 미국의 배우인 록 허드슨과 농구선수인 존슨 등은 에이즈 퇴치 등 캠페인에 이바지했다. 우리도 에이즈 감염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자.

격리나 관리 차원으로만 에이즈를 생각해선 안된다. 에이즈 감염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에이즈 감염자와 함께(World Living with HIV/AIDS)'라는 표어를 내놓았다. 그리고 올바르고 안전한 성생활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에이즈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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