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마다 한골씩 넣겠다 '딱 맞은'호나우두 예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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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베 윙스타디움에는 빛깔·소리, 그리고 기예(技藝)가 있었다.

스탠드는 노란 은행잎이 만개한 언덕에 점점이 선홍색 단풍잎이 자리잡은 모양이었다.'원조 붉은 악마' 벨기에 응원단은 9할이 넘는 브라질 응원단의 기세에 묻혔다. 소리는 남미의 경쾌함이 물씬 풍겨나는 삼바 리듬. 각종 퍼커션과 탬버린 소리는 열대 어느 섬나라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기예. 브라질 선수들은 축구공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하고자 그라운드에 나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날 경기는 긴박감보다 흥겨움이, 비명보다 탄성이 더 어울리는 '여름 밤의 퍼포먼스'였다.

물론 이날 퍼포먼스의 주인공은 호나우두와 히바우두. 전반 22분.왼쪽으로 크게 넘어온 볼을 잡아 가볍게 한 명을 제친 호나우두가 빨랫줄처럼 뻗어가는 크로스를 날렸다. 몸을 공중에 붕 띄운 히바우두가 절묘한 가위차기를 했지만 볼은 살짝 골대를 넘어갔다.'두 남자 쇼'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전반 39분에는 역할을 바꿨다. 똑같이 왼쪽 코너 쪽에서 히바우두가 가운데로 올려준 볼을 호나우두가 마치 태권도 옆차기 하듯 오른발을 뻗었다. 골은 되지 않았지만 놀라운 몸놀림이었다.

벨기에도 들러리만 될 수는 없었다. 전반 35분 마르크 빌모츠의 헤딩슛이 골문을 갈랐지만 푸싱 반칙 판정을 받았다. 벨기에는 후반에도 브라질을 세차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이날따라 브라질 골키퍼 마르쿠스가 펄펄 날았다.

후반 6분 빌모츠의 터닝슛을 가까스로 쳐내더니 9분에는 음펜자의 쇄도를 몸으로 막아냈다. 후반 17분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빌모츠가 절묘하게 감아찬 슈팅마저 몸을 솟구치며 펀칭해 내자 벨기에 선수들은 할 말을 잊었다.

후반 22분 히바우두의 골이 터졌다.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호나우디뉴가 툭 올려준 볼을 가슴으로 트래핑, 왼발로 잡아놓고 다시 왼발로 터닝슛을 날렸다. 볼은 왼쪽 그물에 정확히 꽂혔다.

끝날 시간이 다가오자 호나우두가 바빠졌다."한 경기에 한 골씩 넣겠다"고 한 약속 때문이다. 후반 42분 클레베르손이 터치라인을 따라 질주하다 크로스를 올렸다. 따라 들어가던 호나우두가 정확하게 왼발을 댔고, 볼은 골키퍼 다리를 맞고 가랑이 사이로 빠져 그물에 안겼다. 호나우두보다 동료들이 더 기뻐했다.

'대외적 신용'을 지켰다는 자긍심의 표현이었다. 90분의 퍼포먼스는 어느덧 막을 내리고 있었다.

브라질은 잉글랜드를 맞아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21일의 8강전을 기대하며 관중들은 윙스타디움을 떠났다.

고베=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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