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해 춘 <서울보증보험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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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서 울보증보험 직원들은 오후 5시30분~6시엔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면 사장실로 결재서류를 들고 들어가는 법이 없다.

이 회사 박해춘(朴海春·54) 사장이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한 케이블TV에서 방영하는 동물 프로그램을 시청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동물 애호가를 자처하는 朴사장은 동물의 세계에서 사람이 배울 게 많다고 말한다. "동물조차 새끼나 집단을 위해 자기 희생을 아끼지 않는데 사람들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아옹다옹 다투곤 합니다. 동물들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주지요."

그는 단순히 동물을 좋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회사에서 직접 동물을 키우기까지 한다. 동물 사육이 회사의 경영과 분위기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지난해 이맘때쯤 접견실 한 귀퉁이에 길이 2m가 넘는 대형 수족관을 설치하고 민물고기를 기르기 시작했다.

"흔히 키우는 열대어는 느릿느릿 헤엄치지만 민물고기는 민첩하고 언제나 활력이 넘칩니다. 수족관을 볼 때마다 우리 회사 직원 모두가 힘차고 의욕적으로 근무하자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사실 민물고기를 키우게 된 배경에는 이 회사의 아픈 과거가 있다.

서울보증보험은 1998년 외환위기로 부실화한 대한보증보험과 한국보증보험이 합병해 재탄생한 회사다. 말이 합병이지 거덜난 두 회사를 합쳐놓고 공적자금을 투입해 겨우 살려놓은 회사다. 당연히 엄청난 구조조정 요구가 있었다. 절반이 넘는 직원이 직장을 떠나야 했고, 남은 직원들도 월급이 깎였다. 합병회사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한 朴사장은 그 악역(惡役)을 떠맡아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매일 7시 전에 출근해 밤늦도록 회사를 지켰다. 사장이 솔선수범하니 임직원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강행군이 기약없이 계속됐다. 회사 분위기는 절박함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차츰 성과를 거두면서 회사가 차츰 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는 뭔가 분위기를 바꿀 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민물고기 수족관이다. 민물고기들은 이제 이 회사의 상징물이 됐다.

그는 지난 3월 사옥 주차장 빈 공간에 50평 남짓한 우리를 만들고 진돗개 세마리와 풍산개 한마리를 들여왔다.

한국의 토종개 네마리는 한 지인으로부터 기증받은 것. 朴사장 스스로가 개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여기에도 동물사랑을 회사경영과 연관짓는 그의 버릇이 발동했다.

그는 지난 3월부터 회사와 개인의 역량을 두배로 향상시켜 튼튼하고 신바람나는 일터를 만들자는 '대시 투(Dash Two)'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 운동의 상징물로 진돗개를 떠올렸다. 총명한 진돗개처럼 열정을 갖고 일하다 보면 '대시 투'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래서 개 이름도 '대시''투투''바람''두배'로 지었다.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회사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눈총에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 회사는 올해에는 합병 이후 처음으로 흑자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차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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