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축구'가 실속 챙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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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기지는 못해도 골을 먹는 경기는 않겠다."

이번 월드컵에서 수비축구가 눈에 띈다.

월드컵과 한 시기를 풍미했던 아트사커·토털사커 스타일이 점차 퇴색하면서 수비축구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13일까지 16강에 오른 12개 팀의 경기당 실점률은 0.9다. 이들은 평균 1점도 내주지 않는 짠돌이 수비로 거친 숲을 헤치고 16강에 탑승한 것이다.

이같이 둔탁한 수비축구가 화려한 기술축구를 위협하며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지 관심거리다.

◇북유럽 축구의 강세

주류에서 다소 밀려났던 덴마크·아일랜드·스웨덴 등 북유럽팀의 부활은 수비축구 강세의 본질이다. 이들은 큰 체격, 지치지 않는 체력, 파워풀한 몸싸움이 공통점이다. 공격적인 측면에서도 차고 돌진하는 '킥 앤드 러시(kick & rush)'의 단순한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다.

신문선 본지 해설위원은 "'죽음의 F조' 등 조별리그가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게 수비축구를 유행시킨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즉 질 경우엔 상대팀에 무려 3점을 헌납하는 위험이 있어 아예 비기고 1점만 얻는 차선책을 선택하는 추세다.

◇세트플레이·중앙침투 저지

통계를 봐도 수비축구의 강세는 뚜렷하다. 지난 10일 끝난 조별리그 2차전까지 터진 득점은 모두 81골. 이 가운데 세트플레이에 의한 득점은 페널티킥 10골, 코너킥 6골, 프리킥 5골로 모두 21골이다.

전체 득점에서 세트플레이에 의한 득점은 26%에 그쳐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38.9%에 비해 10% 이상 감소했다. 이는 새로운 세트플레이가 개발되지 못했고 반면 이에 대한 대비책은 크게 향상됐다는 증거다. 또한 중앙 스트라이커나 2선에서 침투하는 선수에게 미드필드에서 전진 패스로 득점을 올리는 경우도 1998년 61.1%에서 40%대로 줄었다.

모든 팀들이 중앙에 두텁게 선 뒤 역습을 노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흥미 반감 논란

수비축구의 강세는 화려한 공격축구나 남미의 기술축구에 비해 인기를 떨어뜨린다는 우려다. 한 축구 전문가는 "민속씨름의 경우 평균 체중이 1백30㎏을 넘어서자 기술씨름이 설 자리가 없어지면서 인기가 시들해졌다"며 "축구에서도 수비에 치중하는 플레이가 범람하면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잡한 수비의 묘미를 이해하면 오히려 축구의 고급스런 측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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