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서점 변해야 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198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들이 이제 서울 시내에 6곳 정도 남았다. 그나마 경영난으로 간판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오히려 사업을 확장하며 중흥을 꿈꾸는 곳이 있다.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앞의 조합식 서점 '논장'이다.

"우리 서점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사람의 힘'입니다. 수익이 나면 문화공동체 운동에 투자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공동투자자들이 모두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죠. 또 고객들과 면대면한다는 오프라인 소형서점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서 운영하기 때문에 단골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논장지기' 이재필(36)씨에 따르면 세들어 있던 건물의 수리 때문에 휴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1년 동안 출자회원이 더 늘어 2백명 가까이 된다. 1년 중 최대 비수기라는 요즘도 25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루 평균 1백2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여기에 최근 독서클럽을 만들고 회원(입회비 1만원) 모집에 나섰다. 광고나 언론에선 소외됐지만 주목할 만한 책들을 골라 읽고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하는 것이 독서클럽의 1차 목표다. 회원들이 직접 기획한 책들을 낼 수 있도록 출판사도 차렸다. 주요 사상가들과 그 저서를 소개한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최성일 지음)가 도서출판 '책동무 논장'의 첫 작품이다. 이씨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의 주 수요층은 소위 운동권 출신의 30~40대입니다. 그런데 출판 공급자들이 일방적으로 건네는 책들로는 그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어렵죠. 그래서 수요를 스스로 창출할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한 겁니다"라고 설명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일종의 '펀딩'개념을 출판에 도입하려는 시도다. 인터넷 홈페이지(www.nonjang.co.kr)를 통해 소개한 원고에 대해 회원들 중에서 투자자를 모집하고 출판사들이 공개입찰에 참여하게 한 뒤, 투자자들의 투표를 통해 출판사를 선정해 책을 내겠다는 것이다. 그 '함께 만드는 책'으로 우선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씨가 고려말의 기승 신돈을 복원한 신작소설 『마하 신돈』(가제)과, 97년 12권짜리 3백질이 한정 출간됐던 『전노협 백서』의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79년 광화문에서 출발한 논장은 93년에 문을 닫았고, 현재의 논장은 84년에 생긴 명륜동 지점이 전신이다. 97년 이씨를 비롯한 조합원들이 인수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사했다. 매달 열리는 '책읽기 4종 경기대회'는 논장만의 자랑거리. 대회기간 동안 서점에 와 있는 시간을 누적체크하는 인내심 테스트, 서점 내의 숨은 책 찾기, 책 퀴즈, 책을 빨리 읽고 오탈자를 찾거나 줄거리를 맞히는 경기로 이뤄진다.

"서점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죠. 인문사회과학서점의 새로운 길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김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