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만은 꼭 잡는다" 폴란드 명예회복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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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미 16강에서 탈락한 폴란드가 충격에서 벗어나 마지막 경기인 14일 미국전에 전의를 불사르고 있다.

예지 엥겔 감독은 13일 숙소인 대전삼성화재연수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만은 꼭 이겨 명예로운 마무리를 하겠다"고 했다. 포르투갈전 패배 직후에 보였던 여유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선수들이라고 다를리 없다.

연수원 관계자는 "몇몇이 모여 이야기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진지해 보인다"며 "미국전에 대비해 잦은 전술 미팅을 갖는다"고 말했다.

두 경기에서 여섯골을 허용, 특급 수문장으로서 체면을 구긴 예지 두데크는 "우리는 곧 돌아가지만 월드컵이라는 파티에서 1승도 거두지 않고 그냥 돌아가지는 않겠다"며 명예회복을 다짐했다.

폴란드 선수들이 미국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이유가 '명예'때문만은 아니다.

3패를 안고 귀국할 경우 쏟아지는 폴란드 국내 여론의 화살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은 최근 일제히 '폴란드여, 집으로…! 더 이상의 창피는 그만'을 외치고 있다.

전직 국가 대표였던 피오트르 구르스키는 "폴란드 선수들은 마치 경기장 위에 자기 한 명만이 서 있다는 듯 팀워크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고 비난했다.

전 국가 대표팀 감독이었던 예지 에르스키 역시 "예선전이 끝난 후 선수들은 실력을 쌓는 일보다 돈을 쌓는 일에 더 열중하지 않았던가. 엥겔 감독에게 경고를 한 바 있으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고 일침을 가했다.

사실 대회 전 감독과 선수들은 지나친 광고 출연과 저서 출판, 소속 클럽과 계약 조건을 놓고 오랜 시간을 할애하는 등 문제를 노출했다.

많은 축구 관계자들이 공개적으로 감독과 노장 선수들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 인터넷 여론 조사에서도 폴란드 국민의 86%가 감독의 퇴진에 찬성하고 있다.

엥겔 감독은 이와 관련, "곧 터질 화산 위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폴란드 선수들은 16일 귀국한다.

비행기도 대통령 전용기다. 폴란드 국민은 16년 만에 진출한 월드컵 본선에서 1승이라도 거두느냐 아니면 3전 전패로 귀국하느냐에 주목하고 있다. 선수들이 미국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할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이런 폴란드팀의 분위기는 한국의 16강 진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기분좋지 않은 시나리오이지만 한국이 포르투갈에 진다 해도 16강 진출이 완전히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전에서 열리는 폴란드-미국 경기에서 폴란드가 미국을 꺾어준다면 한국은 미국과 골득실차를 따지게 된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두데크는 "미국을 반드시 꺾어 한국의 16강 진출을 돕겠다"고 말했다.

문병주 기자·바르샤바=이정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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