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불신 깊어지고 월드컵 열기에 묻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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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48%로 전국단위 선거 중 처음으로 50%를 밑도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총 선거인 3천4백74만4천2백32명 중 투표한 사람은 1천6백68만6백40명에 그쳐 유권자 2명 중 1명 이상이 투표장에 가지 않은 셈이다. 월드컵대회 기간에 선거가 치러지면서 전국적으로 선거분위기가 거의 뜨지 않았던 게 투표율 하락의 결정적 요인이다.

중앙선관위에선 '투표하고 축구 보자'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각급 선관위에 투표참여를 독려했지만 축구열기를 비집고 들어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선관위도 이같은 사정을 감안해 당초 이번 투표율을 45% 안팎으로 내다봤다. 그렇지만 선관위측도 그동안 심리적 하한선으로 여기던 투표율 50%선마저 무너진 것에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월드컵 요인 외에 정치권이 정책대결 대신 흑색·비방·폭로전으로 일관해 투표율 하락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실제로 후보간 상호비방이 극심했던 인천과 부산에선 투표율이 30%대까지 떨어졌다. 정치권에선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후보자들의 전과·병역·납세·재산기록 등이 공개되면서 후보들의 문제점이 많이 드러나 유권자들의 기권을 부추긴 것 같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1인 5표제' 투표방식도 유권자들에게 번거로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런 저조한 투표율은 아직 지방자치제가 국민의 실생활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지방선거 투표율은 1998년 2회 선거 때 52.7%으로 전국단위 투표 중 역대 최저 기록을 세운데 이어 이번에 다시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울산을 제외한 6대 광역시의 투표율이 전국 평균보다 4~9%포인트 가량 낮아 대도시 주민의 정치무관심이 심각한 수준임을 드러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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