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의 대역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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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02년 6월 민심은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1998년 6월의 민심은 국민회의(민주당의 전신)와 자민련의 공동여당 쪽이었다. 당시 공동여당은 광역 시·도지사 10명을 확보했고, 한나라당은 6명을 얻었다. 상황은 4년 만에 확연하게 바뀌었다. 16개 시·도의 단체장 중에서 한나라당은 11명을 확보한 반면 민주당은 4명, 자민련은 1명에 불과했다. 이제 민주당을 '호남당'이라고 불러도 할말이 없게 됐다.

민심이 이처럼 바뀐 이유는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의 '아들비리 게이트'때문이다. 구속기소된 金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의 최규선씨와 관련된 비리의혹들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조차 정권에 대한 배신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金대통령은 반복적인 정치 불개입 선언, 대국민 사과, 민주당 탈당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국민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아직도 민주당이 金대통령의 당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한나라당의 '위장참회론' '위장탈당론'은 분노와 허탈감에 빠져 있는 민심을 파고 들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화갑 대표의 책임도 크다. 당 지도부의 어정쩡한 선거전략과 오락가락 행보,실무적인 선거능력의 취약함이 두드러졌다.

후보는 전략적 목표지역을 설정하는 데 실패해 선거기간 내내 부산과 수도권, 호남쪽을 우왕좌왕했다. 특히 그가 주도한 부산선거는 4년 전보다 사실상 더 저조한 성적을 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98년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김기재(金杞載)후보가 한나라당 안상영(安相英)후보와 아슬아슬한 접전을 벌인 것과 비교됐기 때문에 나오는 지적이다.

선거를 며칠 앞두고 거국내각 구성요구 같은 '특단의 대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당 지도부의 분열양상, 비주류와의 갈등도 민주당을 스스로 주저앉게 만들었다. 대선후보 경선의 후유증과 당력소모도 민주당의 발목을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보여준 한화갑 대표의 지도력은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월드컵 열기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한 설왕설래는 변수가 될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보면 한나라당이 잘했다기보다 金대통령과 자기 내부에 문제가 너무 많았던 게 민주당 패배의 원인인 듯하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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