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린 돈 '본전' 건지려 부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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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내일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날이다. 1998년 6월 4일. 4년 전에도 우리는 기대를 안고 투표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모습에는 큰 차이가 드러났다. 어떤 단체장들은 낙후 도시를 주민 만족도가 높은 도시로 탈바꿈시켜 박수를 받으며 재선에 도전하고 있다. 반면 어떤 단체장들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임기조차 채우지 못하고 구속돼 주민들에게 실망만 안겼다. 어떤 후보가 4년 동안 성실한 일꾼이 될까. 뽑아 놓고 후회해야 했던 단체장은 어떤 후보일까. 지난 4년간의 사례를 통해 후보 선택 기준을 따져본다.

편집자

한번의 잘못된 선택은 4년 동안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안겨준다.

지난 4년간 수뢰와 이권 개입, 파렴치한 행동으로 구속된 지방자치단체장이 많았다. 재량권 전횡으로 주민들과 정책 갈등을 빚는 경우도 늘고 있다. 단체장의 사법처리는 행정업무 공백으로 이어져 주민 불편을 가중시켰다.

이에 따라 '함께 하는 시민행동'은 즉흥적인 사업 결정을 하는 후보, 절차를 무시해 예산을 낭비하는 후보, 재정 책임을 지지 않는 후보를 선택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뭘 잘하고, 뭘 잘못했나=지난해 중앙일보의 전국 도시 평가나 한국능률협회의 지방자치 경영대상, 도시 경쟁력 평가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단체장 36명은 대부분 안정된 재정 운용과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 주민 체감 개선 등에서 높은 평점을 받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단체장이 앞장서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 진척 상황을 챙긴 것은 물론이다. 주민 만족도, 삶의 질 향상, 행정 개혁과 경영 활동·성과 등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에 반해 사법처리돼 중도하차한 단체장은 절반 이상이 뇌물을 수수한 경우다. 아파트 사업 승인 등 건축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건설업체에서 돈을 받은 게 대부분이다.

지난 4년간 각종 비리에 연루돼 사법처리된 기초단체장은 다섯명 가운데 한명꼴이다. 여기에 개인적·도덕적 문제를 일으킨 단체장까지 따질 경우 전국의 '문제 있는 시장·군수·구청장' 숫자는 엄청나게 불어난다. 전문가들은 지방자치 행정의 부패가 위험 수위에 달했다고 경고한다.

◇"돈 선거는 부패로 이어진다"=전문가들은 "돈 선거가 부패를 부른다"고 지적한다.

1998년 선거의 법정 비용 한도는 광역·기초단체장 선거 및 광역·기초의회 의원 선거를 모두 합쳐 2천9백60억원. 하지만 정치권에선 대략 1조원 넘는 돈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선으로 단체장 후보를 선출한 올해의 경우 98년 선거보다 대략 두배 이상의 선거자금이 필요하다고 정치권에서는 추정한다.

그렇지만 지방선거 출마자는 법적으로 후원회도 조직할 수 없게 돼 있다. 돈을 쓰면 어디선가 그 돈을 뽑아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성균관대 이승종(勝鍾·행정학)교수는 "쓴 돈만큼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돈을 준 사람에게 편의를 봐주거나 이권을 제공해 파행적 지방행정이 불가피하다"면서 금품·향응을 제공하는 후보는 절대 뽑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4년간 각종 비리 혐의에 휘말린 단체장들은 선거전에서 2위와의 격차가 10%포인트 이내거나 1만표 이내에서 접전한 경우가 많았다. 세명 중 두명이 이런 격렬한 선거전을 치렀다. 그러나 각종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단체장은 2위와의 격차가 10%포인트를 넘거나 1만표 이상 벌어진 경우가 대다수였다.

치열한 선거전이 돈 선거로 이어지고 결국 이런 현상이 부패 구조의 한 축을 이룬다는 얘기다.

경일대 김광주(金光柱·행정학)교수는 "박빙의 승부로 과열된 선거가 계속되면 후보들은 '되고 보자'는 심리에서 무리하게 되고,이런 부담이 당선 후 부패 가능성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가장 빈발한 사고는 인허가 관련 뇌물수수=지난 4년간 사법처리된 시장·군수·구청장 46명 가운데 뇌물수수가 25명에 이른다. 자치단체장의 인허가권을 이용한 금품 수수다. 뇌물 액수는 평균 5천만원선.

충청도의 한 자치단체장은 골재 채취를 허가하면서 12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물러났고, 전남의 한 시장은 건설업자에게서 억대의 뇌물을 받아 징역형을 받았다. 특히 아파트 건설이나 토지 형질 변경과 관련한 비리가 많았다.

전자입찰 등이 확대되고 있지만 지방정부 공사 발주 과정에서도 여전히 뇌물이 오가고 있었다. 강원도의 한 시장은 하수종말처리장 공사를 맡기면서 1억6천4백만원을 받았고, 전남의 한 군수는 도로 공사 발주와 관련해 건설업자에게서 6천만원을 받아 구속됐다.

부하 직원에게서 승진 부탁과 함께 뇌물을 받거나 선거법·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경우도 많았다. 선거법 위반으로 단속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치적 과시에 골몰한 나머지 사전 선거운동 시비를 일으킨 단체장은 전국에 고르게 분포돼 있다.

뽑고 나서 후회하도록 만든 단체장들은 사법처리된 단체장만이 아니다. 도덕적 문제나 정책 갈등으로 지역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경우도 많았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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