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복 마케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노르웨이는 비자가 필요없습니다."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이 한창이던 1994년 1월 미국 TV에 등장했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사의 광고다. 미국인들은 노르웨이 입국비자가 필요없다는 점에 착안, 올림픽 공식 파트너이자 라이벌인 비자카드의 광고효과를 크게 잠식했던 이 광고는 이른바 '매복 마케팅(ambush marketing)'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매복 마케팅은 미국의 저명한 마케팅 전문가 제리 웰시가 만든 용어다. 웰시는 아마추어인 미국 올림픽대표팀에 개인과 기업들의 자발적인 지원을 이끌어내는 '공익(Cause-related)마케팅'기법을 개발한 인물이다. 그는 84년 LA올림픽 당시 공식 스폰서 계약을 맺지않은 업체들이 교묘하게 올림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나 카피를 매복시켜 싼값에 높은 홍보효과를 챙긴 광고 및 영업기법을 가리켜 매복 마케팅으로 불렀다.

LA올림픽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월드컵을 주최하는 국제축구협회(FIFA)등은 매복 마케팅 차단 규정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FIFA는 전세계에서 15개 업종별로 1개사씩 선정한 공식 파트너와 한국내로 영역이 제한된 6개 지역 파트너 외에는 월드컵이라는 단어는 물론 일체의 상징물을 쓰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업체당 평균 4천만달러(약 5백억원)의 후원료를 내는 공식 파트너사나 FIFA 입장에서는 매복 마케팅이야말로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법과 규정을 미꾸라지처럼 피해나가는 마케팅 기법은 갈수록 발달하고 있다. 월드컵 대신 붉은 악마를 동원한 SK텔레콤의 광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공식 후원업체가 아니라 월드컵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못썼지만 붉은악마와 함께 외치는 '대~한민국''오 필승 코리아'등이 국민 구호로 파고들면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매복 마케팅은 불법은 아니지만 편법이라는 특성 때문에 도덕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제리 웰시도 "매복 마케팅이 적절히 통제되지 않으면 스폰서 제도의 근간이 흔들려 궁극적으로는 스포츠와 기업 모두 피해를 보게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월드컵 열기가 더해질수록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는 상혼도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어쩌겠는가. 골키퍼가 있어도 골은 들어가는 것을.

손병수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