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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서 서울까지… 5천萬 응원축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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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시청 앞에서 마라도까지, 전국은 거대한 축제장이었다. 해가 뜨기 무섭게 사람들은 붉은 색 티셔츠를 입거나 빨간 스카프 등 '월드컵 패션'을 한 채 무엇에 끌리기라도 한듯 하나둘씩 전국 81개의 전광판 앞으로 몰려나왔다.

그리고 오후 3시30분 전국의 주요 거리에서 한덩어리를 이룬 68만명(경찰 추산)의 군중은 1백분 동안 쉴새없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빗줄기도,1-0으로 뒤진 상황도 하나된 국민의 염원을 약화시키지는 못했다.

더 이상 젊은이들만 붉은 악마가 아니었다.'대~한민국''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젊은이들 속에는 붉은 셔츠를 입은 70대 할머니도 있었고 50대 회사원도 있었다. 대학생 딸과 함께 전광판 앞에 앉은 40대주부의 얼굴에도 태극기가 그려져 있었다.

어디 거대한 붉은 군중뿐인가. 사찰에서도 찜질방 휴게실과 다방·극장에서도 수백만명의 응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월드컵 한-미전이 열린 10일 국민은 축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국민 축제일을 맞아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지되고 축구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30여만명이 들어찬 서울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일대는 응원 축제의 심장부 같았다. 광장은 15년 전 '6·10항쟁' 때 이 장소를 메웠던 '넥타이 부대',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온 중·고생들, 주부 등이 붉은 악마와 한덩어리, 한 목소리된 용광로였다. 삼성그룹은 이날 오전 전격적으로 오후 휴무를 결정해 뜨거운 응원 열기에 가세했다.

친구들과 함께 시청 앞에 나온 이화여고 2년 최나영(18)양은 "응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축제를 즐기는 것 같다"며 "이같은 흥분과 감동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 최고의 명물로 세계인들의 화제가 된 길거리 응원엔 외국인들도 몰렸다. 포르투갈에서 친구들과 함께 전날 서울에 도착한 마누엘 산토스(30·엔지니어)는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 길거리 응원에 동참하러 광화문에 나왔다"면서 "황홀하고 멋진 경험"이라고 감탄했다.

국도 최남단 마라도에서, 동쪽 끝 독도에서도 응원의 함성은 끊이지 않았다. 마라도 등대 근무자 3명은 TV중계를 지켜보며 미니 응원전을 벌였다. 백령도 주민들도 출어를 미룬 채 삼삼오오 모여 경기를 시청했다. 내무반에서 TV를 시청한 독도경비대 대원들은 "마음은 대구 경기장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응원장 한 곳을 마련했던 마산 경남대는 인근 주민 등 7백명이 몰려들자 본관 1층 수시모집 창구에 있던 접수 현황판을 중계방송용으로 급히 바꾸기도 했다.

강원랜드 카지노장도 이날 경기시간에는 영업을 중단하고 고객과 종업원이 한데 어울려 경기를 봤다. 수학여행길에 오른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경북 경주에 수학여행을 온 서울 서초중 교사와 학생 3백여명은 경주역 광장에서, 고창여고 학생 4백여명은 목포에서 제주로 가는 여객선에서 한국팀을 응원했다. 이날 울산구치소 수형자들의 응원 모습을 취재하기도 한 브라질의 스포츠 전문방송인 '브라질 ESPN' 관계자는 "역대 최고 수준인 한국의 월드컵 열기에 놀랐다"고 말했다.

황선윤·성호준·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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