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순회하며 클래식 공연 열어 '예술과 기업의 만남' 장성숙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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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기름 냄새 나는 공단에 울려 퍼지는 클래식 선율.

사단법인 '예술과 기업의 만남' 이사장 장성숙(51)씨가 추구하는 것은 언뜻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두 요소의 조합이다.

張씨는 1999년부터 안산·반월 공단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 일원의 공장을 찾아 다니며 클래식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해엔 공단 내 사업장, 학교 강당과 예술회관 등에서 50여 차례 공연했다.

"시간이 나더라도 기껏 노래방이나 술집을 찾는 근로자들을 보고 안타까웠어요. 그들도 고급문화의 세계를 경험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張씨는 연 매출액 4백억원 규모의 인쇄회로기판(PCB)업체인 ㈜ 엑큐리스의 대표를 지냈다. 갖은 고생 끝에 회사가 커져 코스닥 등록까지 하는 등 안정을 찾자 동업자이기도 한 남편에게 경영을 맡기고 2선으로 물러났다. 대신 현재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

삭막한 공단에 문화적 향기를 불어넣고 싶은 욕심에 경기도·안산시·문예진흥원과 생각이 깊은 기업주 등을 찾아 다니며 재정 후원을 약속받았다. 모자라는 운영비는 개인 주머니를 털어 충당했다. 그러나 워낙 이질적 요소인 '공장'과 '클래식'의 조화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어렵게 초청한 한 여성 성악가가 공연장으로 예정된 공장 식당을 보더니 '어떻게 이런 냄새나고 어수선한 곳에서 노래를 부르겠느냐"며 화를 내고 가버리더군요."

기업주와 근로자들을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기업주들은 생산에 차질을 빚을까봐 싫어했고, 근로자들은 그 시간에 차라리 쉬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어렵게 양측을 설득해 공연을 끝내면 고급 연주회장에서 받을 수 없는 색다른 감동을 받는다고 張씨는 말했다.

"한 근로자에게서 '40평생 바이올린 소리를 직접 듣기는 처음이다. 인간 대접을 받는 것 같아 좋았다'는 인사를 받았을 땐 그동안의 고생이 싹 씻기는 듯했습니다."

처음엔 출연을 꺼리던 음악가들도 이젠 먼저 공연 날짜를 물어올 정도가 됐다. 특히 거의 무보수로 오케스트라 단원 35명을 지휘하는 최영주 음악감독(연세대 음대 교수)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張씨는 "반월공단에 있는 사단법인 사무실을 근로자들이 악기와 그림 등을 배울 수 있는 문화센터로 키우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글=이현상·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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