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론·지단·피구-'구름속' '햇빛 쨍'-베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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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강한 미드필더는 현대 축구에서 승리의 필수조건이다. 그라운드를 넓게 바라보는 중원에서 경기를 읽는 탁월한 감각과 절묘한 패스로 찬스를 만들어내거나 득점을 엮어내는 미드필더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아르헨티나)·지네딘 지단(프랑스)·루이스 피구(포르투갈) 등 세계 축구를 황금 분할 하고 있는 미드필더 '사천왕(四天王)'들의 발끝에 월드컵 우승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 '중원의 야전 사령관'은 월드컵 개막 이후 엇갈린 기상도를 그렸고, 그에 따라 월드컵 우승 전선도 뒤바뀌었다.

PK 결승골 명예회복

◇베컴-흐린 뒤 맑음=한때 그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닥친 부상 폭풍으로 잉글랜드 우승 전선은 월드컵에서 저멀리 비껴나가는 듯했다. 더군다나 승리를 불러온다는 왼발의 등뼈에 금이 갔다.

지난 2일 스웨덴전에서 오른쪽 날개에 투입돼 팀의 공격을 조율했던 베컴은 전반 24분 코너킥으로 선제골을 어시스트했지만 스웨덴의 동점골 이후에 교체되면서 그라운드를 걸어나가야만 했다.

그러나 7일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전반 44분 페널티킥 결승골을 뽑아내면서부터 부활을 선언했다. 모처럼 부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풀타임을 뛴 베컴은 결승골 뿐만 아니라 재치있는 패스로 공격의 실마리를 제공하면서 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페널티킥을 유도한 것은 마이클 오언이었지만 베컴은 왼쪽으로 때릴 듯하다가 가운데로 낮게 깔아 차면서 타이밍을 빼앗는 킥의 예술을 보여줬다.

잉글랜드전 교체 수모

◇베론-마른 하늘에 날벼락=초반 그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2일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베론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감각적인 논스톱 패스와 역동적 플레이로 그라운드를 수놓았다.

그리고 후반 18분 그가 날린 왼쪽 코너킥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머리에 정확히 얹혀져 결승골로 연결됐다. 베론의 맹활약에 도박사들이 아르헨티나를 우승 1순위로 꼽아 마치 우승을 이룬 듯 했었다.

그러나 라이벌과의 자존심 대결이 너무 부담이 됐을까. 지난 7일 벌어진 잉글랜드와의 한판은 앙숙팀끼리의 대결 뿐만 아니라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같이 뛰고 있는 베컴과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자리를 놓고 싸운 실력대결이었다. 결과는 베론의 완패였다.

이날 넓은 그라운드에서 그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베론의 패스는 잉글랜드의 수비진을 좀처럼 뚫지 못했고, 미드필드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는 간데 없었다. 상대의 거친 수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다 결국 후반 신예 파블로 아이마르와 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고질적 발목 부상 시달려

◇피구-잔뜩 흐림=피구는 포르투갈이 지난 5일 미국에 패하는 바람에 잔뜩 흐린 날씨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전에서 피구는 선발 출장해 90분 풀타임 뛰었으나 세계적 스타라는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더군다나 고질적인 오른쪽 발목 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좀처럼 갤 듯한 기미가 안보인다. 지난 2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뒤 5일 경기가 넉달 만의 풀타임 출장이었던 만큼 피구는 아직까지도 경기 감각을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피구는 미국전에서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했다. 포루투갈 주치의는 "피구는 발목에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고 했지만 아직도 완전 회복까지는 먼 길이 남아 있다. 그를 앞세워 우승까지 노린 포르투갈의 자신감은 예선 탈락을 걱정하는 우려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2경기 결장 16강 탈락 위기

◇지단-기나긴 장마에서 벗어날까=이제는 부상의 끝자락이 보이는 듯하다.

지난달 26일 한국과의 평가전 도중 허벅지 근육이 파열돼 교체된 지단은 보름 만인 지난 8일 팀의 정식 훈련에 합류했다. 왼쪽 허벅지에 압박 붕대를 감고 패스와 드리블 훈련을 소화했다. 지단이 결장한 가운데 세계 최강 프랑스는 세네갈전 패배와 우루과이전 무승부라는 수모를 겪으며 A조 최하위로 내려앉았다. 또한 11일 덴마크전에서 최소 두 점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불리한 형국이다.

장 마르셀 페레 프랑스팀 주치의는 "지단의 부상 부위에 대한 정밀진단 결과 덴마크전에 뛸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경과를 지켜보고 로제 르메르 감독과 상의해 경기 전날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 소식에 프랑스는 벌써부터 천군만마를 얻은 분위기로 바뀌면서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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