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견제론 번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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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국인투자자에 대한 견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외국 투기자본을 견제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기관투자가 사이에서도 국내 기업을 지원하려는 연대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 이런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정서에 편승해 외국자본을 감정적으로 배척하는 흐름까지 일고 있는 데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번지는 견제 분위기=열린우리당 배기선 의원은 지난 23일 국내 주요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투기성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를 골자로 하는 '외국인투자 촉진법 중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국가의 안전과 공공질서 유지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판단될 때 외국인의 투자나 경영지배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배 의원 측은 '국민경제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도 외국인 투자 제한사유로 추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배 의원은 "1997년 이후 외국자본은 경제 위기 극복에 도움을 줬지만, 최근 투기성 해외자본이 단기 시세차익만 노리면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는 등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중순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은 투기적 자본에 의한 적대적 M&A 방어를 위한 증권거래법 개정안을 냈고, 같은 당 박영선 의원도 최근 국내외 대주주의 지분변경 제도인 '5%룰'을 강화한 관련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자산운용업계에선 '의결권' 카드를 적극 활용해 외국인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윤태순 자산운용협회장은 지난 22일 기자들에게 "외국인투자자들이 마음대로 (기업을)흔들지 못하도록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협회총회 때 의견을 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감정적 대응은 곤란"=한 시중은행장은 "불법행위는 가려내야겠지만 최근 외국계(투자자)에 대한 정서적 반감이 고조되는 것은 걱정스럽다"면서 "한두곳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외국계 전체를 한꺼번에 매도하는 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겠다는 건 해석이 모호해 악용될 위험이 있고, 시장경제의 논리에도 맞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JP모건증권 임석정 한국대표는 "동북아의 금융허브를 만든다면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자칫 감정적 대응을 하다 보면 한국시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증권연구원의 빈기범 연구위원은 "외국 자본이 재벌 총수들의 전횡을 억제하는 시장감시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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