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당선자 ‘합동 근무’ … 갈등 피해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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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광주광역시 교육청은 12일까지 학교법인과 기업 등을 대상으로 광주외국어고 유치 희망신청을 받고 있다. 전국 15개 광역 시·도에 33개의 외국어고가 있지만 광주에만 외국어고가 없어 지난해 95명, 올해는 110명의 학생이 외고 진학을 위해 광주를 빠져나갔다.

11월 6일 임기가 끝나는 안순일 교육감은 임기 안에 행정절차를 모두 끝내 2012학년도부터 신입생을 받도록 할 예정이다.

문제는 11월 8일 취임하는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당선자가 “수도권 지역에 있는 외국어고 가운데 경영상 어려움 때문에 실패한 사례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 당선자 측의 김재갑 언론특보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교육 3주체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토론회·공청회 등을 거친 뒤 외고 설립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칫 외고 문제가 ‘갈지 자’ 걸음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광주에 사실상 두 교육감이 있기 때문이다.

광주시가 광역시로 승격한 1986년 교육청이 전남교육청에서 독립하면서 교육감의 임기 시작을 11월 6일로 정례화한 것이 발단이다. 2006년 지방교육자치법 개정 때는 ‘2010년 6월 말 이후 임기가 끝나는 교육감은 그대로 임기를 보장한다’는 특례조항까지 만들었다.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교육감들이 1일 일제히 취임식을 갖고 의욕적으로 업무를 시작했으나 유독 광주만 4개월 동안 교육감과 교육감 당선자가 존재하는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다.

이렇다 보니 인사나 행정 곳곳에서 파행과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광주외고 설립을 둘러싼 이견이 대표적이다. 1일 단행된 광주교육청 정기 인사는 예년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정년퇴임이나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공직자의 후속 인사를 하는 선에 그쳤다. 이들은 선거 직후 한 차례 신경전을 벌였다.

안 교육감이 “7월과 9월로 예정된 정기 인사를 예정대로 하겠다”고 하자, 장 당선자 측이 “인사·예산 편성 등에서 사전협의가 필요하다”며 견제한 것이다. 친환경 무상급식과 혁신학교 설립 등 선거 때 약속했던 정책·공약 추진을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안 교육감이 “사전 조율을 요구하는 것은 월권”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안 교육감이 중도 성향인 반면, 장 당선자는 전교조 광주지부장 출신의 진보 성향이어서 앞으로 민주노동당 가입 교사 징계 문제와 자사고 운영 등 주요 현안을 놓고 대립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4개월여의 교육행정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광주교육대학 이정선(교육학과) 교수는 “현 교육감이 추진하려는 사업이 당선자의 정책과 맞지 않으면 행정력이 낭비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고 강조했다.

광주=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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