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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맞고 몰랐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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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유물 한 점이 사라졌다. 하지만 언제 없어졌는지 모른다. 지난 10월 새 관장이 부임해 유물들을 점검하다가 야외 전시장에 있던 석인상(石人像.사진)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전의 마지막 점검 시점이 2002년 5월이므로 그때부터 지난 10월 사이에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관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박물관 측은 그러나 두 달이나 도난 사실을 쉬쉬했다. 경주박물관과 상급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일부 관계자만 알고 있었고, 문화관광부에는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사라진 유물은 높이 50㎝, 폭 10㎝의 19세기 석상이다. 값으로만 따지면 박물관 내 유물 중 가장 낮은 등급에 속한다. 절도범이'전문가'는 아닐 것이란 얘기다. 경주박물관 학예실장은 "잃어버린 유물은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가 아닌 민예품 수준으로 값으로도 수백만원대밖에 안 된다"고 애써 해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전시물이 1200점이나 돼 일일이 확인하기 쉽지 않은 데다 야외 전시물이라 속수무책이었다"고 설명했다. 야외 전시장에는 CCTV는 물론 경보장치도 없었다고 한다.

지난해 5월에는 국립공주박물관에서 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해 넉점의 유물을 도난당했다가 경찰의 수사로 되찾았다. 그때 당국은 국립박물관의 철저한 보안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주박물관 측도 "현재 1억3000만원을 들여 감시카메라 등 보안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이므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박물관의 다짐이라 영 미덥지 않다.

이상언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