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사커 '비틀' 프랑스 왜 이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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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챔피언의 분투는 아름다웠지만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우아하면서도 저돌적인 공격은 잊혀졌던 '아트 사커'의 모습을 되살려놓는 듯했지만 결국 골을 성공시키지는 못했다.

전 대회 우승팀이자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프랑스가 우루과이와의 2차전에서도 득점없이 비겨 예선 탈락 위기에 놓이게 됐다. 프랑스는 남은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2-0 이상으로 크게 이기지 못하면 16강에 진출할 수 없다.

경기 시작 전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이예즈'가 경기장에 울려퍼지자 프랑스 선수들은 어깨를 맞잡았다.

벤치에 있는 감독과 대기 선수들까지 어깨동무를 하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따라 불렀다. 선수들의 얼굴에는 세네갈 경기 직전과 같은 여유있는 미소 대신 비장한 각오의 눈빛이 번득였다.

주심의 휘슬이 울렸고 선수들은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전반 7분과 8분,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조앙 미쿠의 패스가 스트라이커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연결되면서 우루과이의 간담을 서늘하게했다.

계속된 공격에서 14분 미쿠가 우루과이 페널티 박스 안으로 살짝 올려준 공이 티에리 앙리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만드는 듯 했으나 상대 수비가 한 발 앞서 걷어냈다. 전반 20분 동안 실뱅 빌토르가 오른쪽으로 치고올라가고 중앙의 미쿠에게 연결되는 데까지는 성공적이었지만 최종 공격수에게 이어지는 패스가 상대의 밀집 수비에 번번이 막혔다.

계속해서 파상 공세를 벌이면서도 이렇다할 슈팅조차 날리지 못하자 오히려 불안해진 건 프랑스였다.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미쿠의 패스가 정교함이 떨어져 위력적인 공격으로 이어지지 않자 프랑스 선수들은 지네딘 지단의 공백을 절감하는 듯했다.

그 순간 프랑스에 커다란 먹구름이 드리웠다. 전반 25분 프랑스 공격의 핵인 앙리가 상대에게 태클을 시도하다 퇴장을 당한 것이다. 프랑스 선수들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곧바로 우루과이의 거센 역습이 이어지면서 프랑스는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진 듯했다. 당황한 프랑스와 이를 이용하려는 우루과이 선수들의 지능적인 신경전으로 경기는 거칠어져 프랑스의 에마뉘엘 프티와 우루과이의 다리오 실바 등이 경고를 받았다.

후반 들어 프랑스는 '질 때 지더라도 비기지는 않겠다'는 듯 공격의 고삐를 더욱 조였다. 선수가 한 명 적은 프랑스가 적극적인 공격을 하자 이때부터 양 팀은 1분 간격으로 밀고 밀리며 이번 대회 최고의 명승부를 연출했다.

후반 3분 프티의 패스를 받은 빌토르가 골키퍼 키를 넘겨 찬 공이 우루과이의 골대를 살짝 넘었고, 6분 우루과이의 레코바는 프랑스 골키퍼 바르테즈와 일대일로 맞서는 찬스를 맞기도 했다. 정확히 30초 뒤 트레제게가 비에라의 헤딩 패스를 받아 회심의 슈팅을 날렸으나 골키퍼 손에 살짝 걸렸고 다시 30초뒤 레코바는 바르테즈까지 제치는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으나 옆 그물을 때리고 말았다.

레코바의 왼발이 번쩍거리면 우루과이 응원단의 함성이 메아리쳤고 트레제게의 슈팅이 작렬하면 프랑스의 삼색기가 물결쳤다. 후반 20분이 지나면서부터는 프랑스가 공격의 주도권을 잡았고 빌토르와 트레제게, 미쿠의 슛이 우루과이 문전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결국 골은 터지지 않았다.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전광판에 비치는 로제 르메르 프랑스 감독의 눈빛에는 초점이 사라진 것 같았다.

부산=신준봉·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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