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 맥베스 해석에 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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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여성 연출가 한태숙(53)씨가 최근 폴란드의 '콘탁 국제 연극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한씨가 재창작·연출한 '레이디 맥베스 2002'가 이 축제의 공식참가작으로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한국 작품으로는 처음 이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한씨는 "결과가 좀 서운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함께 참가했던 체코 등 외국의 연극 관계자들이 최우수상감으로 '레이디 맥베스'를 지목했지만 막상 아무 상도 못탔기 때문"이란다.

영어의 '접촉(Contact)'을 의미하는 콘탁(Kontakt)페스티벌은 11년 역사로 비록 젊지만 작품 선정 등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동구권의 대표급 축제다.

1999년 내한 공연에서 '햄릿'을 선보인 리투아니아의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 등 세계 연극의 거물들이 이 무대를 통해 컸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로 시작하는 김광균의 '추일서정'에 나오는 토룬시에서 매년 5월 마지막 주에 열린다.

경연을 벌이는 공식참가작 11편 등 세계 곳곳에서 1백여편의 작품이 참가한다. 한씨는 95년 연출작 '덕혜옹주'의 일본 공연 이후 처음 해외에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사실, 그곳 사람들로부터 작품이 존중받지 못한 채 오락 정도로 평가받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다. 첫날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몇몇 관객들이 킥킥대며 웃는 등 그런 반응이 없지 않았다. '그래 5분만 봐라. 너희들 죽었다'며 별렀는데, 시간이 지나자 금방 진지해졌다. 끝날 때 기립박수는 불문가지였다."

한씨의 대표작인 '레이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를 부인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작품이다.

왕위 찬탈과정의 막후 조종자였던 맥베스 부인을 통해 인간 내면에 숨겨진 범죄심리와 죄의식, 욕망의 파멸 과정을 섬뜩하게 그렸다. 98년 초연 이후 거의 매년 재공연되면서 크게 성공해 '고전 재해석의 좋은 본보기'로 자주 언급된다.

이번 폴란드 공연은 LG아트센터의 김의준 대표가 맨 먼저 다리를 놓았다. 여러 차례 이 축제를 본 김씨가 이 작품의 출품을 예술의전당에 의뢰했고, 예술의전당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국내외 공연의 제작사가 된 것이다. 예술의전당은 8~23일 자유소극장에서 기념 공연을 가진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 연극의 경쟁력을 확인한 계기가 됐다. 사람들은 주연인 서주희의 연기에 전율했고, 타악그룹 공명의 라이브 연주에 감동했다. 대본이 정말 창작품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그만큼 충격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이 작품은 내년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열리는 셰익스피어 페스티벌과 덴마크 오딘 시어터의 아시안 페스티벌에 다시 초청받았다. 한씨는 "이처럼 일단 자신들이 인정한 작품에 대해 뒷일을 보장해 주는 서구 연극인들의 프로정신은 본받을 만하다"고 말했다.'레이디 맥베스'는 1만달러(약 1천3백만원)의 출연료와 항공·체재비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이번 축제에 참가했다.

예술의전당 공연에는 정동환·서주희·김영민·송희정·이영일과 공명 등 해외공연 멤버가 그대로 나온다. 공연개막 오후 7시30분, 수·토 오후 4시 추가, 일 오후 4시, 월 쉼. 02-580-1300.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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