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의 문턱까지 다다른 듯했던 세계 경제가 다시 주춤거리고 있다. 유럽에 이어 미국·중국 등 곳곳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린다. 정상화 과정에서 으레 나타나는 불가피한 마찰음이란 게 낙관론자들의 해석이지만 경기 재침체(더블딥)의 전조라는 경고도 나온다. 썩 좋지 않은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든 건 부양과 긴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각국 정부들이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장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돈이 다시 안전지대를 찾아 흘러가는 이유다.
시장도 잔뜩 몸을 낮추고 있다. 미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지수는 7거래일째 하락하며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연속 하락 기록으로는 2008년 10월 금융위기 발발 당시(8일) 이후 가장 길다. 경기 전망과 동행하는 국제유가도 최근 하락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긴축·부양 놓고 ‘파열음’=요즘 경제 정책의 최신 유행어는 ‘긴축’이다. 남유럽발 재정 위기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지난달 주요 20개국(G20)회담 직전 “신뢰의 부재가 경제 회복을 가로 막는 상황”이라며 긴축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정책과 경기 흐름간의 ‘엇박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최근 높아지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케인스주의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최근 칼럼을 통해 재정적자를 줄이기로 한 G20 회의 결과를 강력 비판하며 “우리는 현재 ‘제3의 불황’의 초기 단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재정 긴축을 통한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정책 엘리트들의 상상이 만들어 낸 허구에 근거한 얘기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날 선 공방 속에 각국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G20회의에서 미국은 ‘부양책 지속’을 주장했지만 지난달 민주당은 연초부터 세 차례에 걸친 표결이 무산되자 추가 부양책을 철회했다. 당초 2660억 달러 규모에 달했던 부양책은 수차례 퇴짜를 맞으며 340억 달러짜리 ‘미니 부양안’으로 전락했지만 이마저 통과가 어려워진 것이다. 일본에선 간 나오토(管直人) 신임 총리가 재정 적자 축소를 위한 소비세 인상을 거론했다가 지지율이 급전직하하기도 했다. 월가의 유명 투자전략가인 바톤 빅스(트랙시스파트너스 대표)는 1일 블룸버그TV에 출연해 “부양책 철회 같은 정책적 실수들이 일시 조정에 그칠 경기를 후퇴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민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