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체스, 발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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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축구가 뭐길래 온 지구촌이 이처럼 흥분되어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줄 안다.

축구를 잘 아는 어떤 분에 의하면, 축구란 전쟁이면서 체스(chess)이고 발레(ballet)라고 한다.

축구가 전쟁이라는 말은 전쟁만큼 격한 싸움이라는 뜻일 게다. 전쟁에서처럼 축구에서도 한편이 이기면 다른 한편은 지게 돼 있다. 그리고 축구는 육체적으로 상당히 폭력적인 운동이다.

둘째로 축구는 체스처럼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운동이다. 덮어놓고 뛰기만 한다면 에너지만 낭비하게 되고 결과는 오히려 불리하게 된다. 전략은 상대방의 약점과 장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경쟁의 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계획을 뜻한다. 물론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약점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격렬함과 전략과 리듬

마지막으로 축구는 발레와 같다는 말은 축구도 발레처럼 리듬이 있고, 발레와 같이 아름다울 수 있고 또 아름다워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유명한 축구선수들의 몸놀림을 보면 발레 못지 않게 율동적이며 아름다운 균형과 생동감이 넘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뜻에서, 축구는 한편 스포츠인 동시에 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쟁, 체스, 그리고 발레!

이 가운데 하나만 해도 사람들을 충분히 흥분시킬 수 있는데, 이 세 가지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축구, 바로 그런 축구의 세계적인 대 축제가 한국에서 열리는데 흥분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축구는 원래 유럽에서 시작돼 유럽에서 발전해 왔다. 그런데 유럽의 경험을 보면 이미 지적한 축구의 세 가지 특성 이외에도 다음 두 가지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우선 오늘날 축구는 하나의 산업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수요가 발생하게 되어 있고 축구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게 돼 있다. 특히 현대 사회가 날로 증가하는 여가시간을 활용하는 문제에 부닥치면서 축구는 관람스포츠(spectator sports)로서 엄청난 규모의 서비스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물론 축구의 상업화는 문제도 낳지만,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축구 이외에도 제기되는 문제로서 결국은 우리들이 얼마만큼이나 균형감각과 건전한 가치관을 견지하고 있는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지나친 상업화의 위험 때문에 축구의 산업화 자체를 거부할 수도 없고 거부해서도 안된다.

마지막으로 축구는 정치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외국(특히 일본) 팀과 경기를 하는 현장에 있어 본 사람은 모두 경험했으리라 믿지만, 보통 때에는 점잖게 민족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던 사람도 우리나라 선수가 상대방의 골문 안으로 공을 차 넣었을 때, 동물적인 통쾌감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동체 강화 정치적 기능

유럽이나 남미의 경험을 보면 축구는 민족주의를 가장 강렬하게 자극한다. 중남미에서는 축구 때문에 전쟁까지 한 예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대~한민국'이라고 부르짖는 '붉은 악마'들의 함성이 스타디움을 가득 메우면 민족적 소속감이 가장 강렬하게 와닿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축구가 민족주의만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의 반과 반, 학교와 학교, 동네와 동네, 직장과 직장 사이에도 축구는 강렬한 소속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뜻에서 축구는 공동체를 공고하게 만들어 주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월드컵이 끝나고 세계의 축구잔치가 끝난 후에도 우리는 축구를 사랑하고 즐기는 국민이 되었으면 한다. 축구를 통해 공동체를 탄탄하게 만들었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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