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긴 일본 연예계, 굵고 짧은 한국 연예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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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박용하(사진)의 사망 소식을 처음 접한 건, 지난달 30일 일본 TBS방송의 아침 정보 프로그램 ‘히르오비’를 통해서였다. 일본 월드컵 대표팀이 전날 밤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는 소식으로 아침부터 방송이 떠들썩한 날이었다. 헤드라인으로 축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속보로 박용하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고, 이후 관련 뉴스가 일본 방송을 뒤덮기 시작했다.

‘한류스타’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일본인들이 누구나 이름과 얼굴을 아는 진짜 한류스타는 그리 많지 않다. 박용하는 일본에서 배용준, 이병헌과 함께 남녀노소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얼굴을 떠올리는 몇 안 되는 한국 연예인이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한국 드라마 붐을 일으킨 ‘겨울연가’에 출연했다는 프리미엄도 있었지만, 이후 가수로 활발하게 활동해 인기를 이어갔다. 2004년 데뷔 앨범 ‘기별’을 시작으로 싱글 앨범 8장, 스페셜 앨범 2장 등을 발표하면서 한국 가수 최초로 4년 연속 골든디스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 6월에도 일본에서 신작 앨범을 발표하고, 5년 만에 전국투어 콘서트를 진행 중이었다. 사망 일주일 전인 6월 24일에도 일본 사이타마에서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한다.

이 같은 이유로, 박용하의 죽음에 대한 일본 미디어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연예 정보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일반 뉴스에서도 박용하의 사망 소식을 비중 있게 전했으며, 박용하가 일본에 올 때마다 찾아갔다는 레스토랑 등을 방문해 그와 얽인 사연들을 전했다. ‘한류의 성지’라고 불리는 도쿄 신오쿠보에 마련된 박용하의 임시 분향소를 찾아가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며 대성통곡하는 팬들의 모습을 비추기도 했다. 박용하의 음반도 추모 열기에 힘입어 다시 관심을 모았다. 지난달 9일 발표한 ‘스타스(Stars)’는 오리콘 앨범 차트에서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가 사망 다음 날인 7월 1일 31위로 뛰어 올랐다. 이와 함께 지난해 발표한 ‘원 러브(One Love)’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등도 각각 46위와 87위로 차트에 재진입했다.

한편 일부 언론들은 “한국 연예인들의 자살이 이토록 잦은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후지TV 정보 프로그램 ‘도쿠타네’는 최근 몇 년간 자살한 한국 연예인의 리스트를 소개하며 “지나치게 발달한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연예인 자살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자살을 선택한 이들의 마음속 깊은 어둠을 감히 상상할 수 없겠지만, 한국 연예계의 불안정한 구조도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 연예인들은 한 기획사에 평생 소속돼 월급을 받는 ‘직장인’에 가깝다. 즉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더라도 ‘가늘고 길게’ 연예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연예인들은 대중의 관심에 따라 순식간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순식간에 잊혀지기도 한다. 생전 박용하도 “나의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박용하를 만났던 건 2002년 드라마 ‘러빙유’ 촬영 현장에서였다. 당시 ‘겨울연가’의 성공으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겸손하고 유머러스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가 일본에서 행사를 가질 때마다 비가 내려 일본 팬들 사이에서는 ‘아메오토코(雨男·비를 부르는 남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영결식이 열린 2일에도 어김없이 비가 왔고, 100여 명이 넘는 일본 팬이 한국까지 찾아가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많은 팬들의 바람처럼 하늘에서만이라도 늘 평안하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영희 misquick@naver.com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현재 도쿄 게이오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아이돌과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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