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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We Start'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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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해마다 이맘때면 북유럽 국가들 사이에 가벼운 설전이 벌어진다. 덴마크와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등이 서로 자기 나라에 산타클로스가 살고 있다고 우긴다. 산타클로스 마을이 자기 나라의 북극 얼음 땅에 있다는 주장이다. 덴마크 같은 경우 산타클로스의 선물 공장이 있는 자기 영토 그린란드가 지구 온난화 때문에 녹고 있다며 선물 공장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아이스 링크를 건설하자고 제안할 정도다. 핀란드가 산타클로스의 거주지로 소문난 것은 1927년부터다. 당시 핀란드의 한 라디오가 "핀란드의 로바니에미 마을에 있는 코르바툰 투리 산에 산타클로스가 산다"고 방송했고, 이 소문이 전 세계에 퍼지면서 로바니에미는 산타 마을이 되어버렸다. 핀란드 정부는 한 술 더 떠 84년에 로바니에미가 속해 있는 라플란드 주(州)를 산타 지역으로 선포했다.

실제 산타클로스는 서기 270년 터키 지역에서 탄생한 세인트 니콜라스에게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후에 미라의 대주교가 된 세인트 니콜라스는 가난한 집에 슬그머니 돈이나 양식을 놓고 가는 등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고, 그의 자선행위에서 산타클로스 얘기가 생겨났다. 세인트 니콜라스의 이름이 미국어화하면서 산타클로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 맨체스터대 인류학 연구팀은 50년에 발굴된 세인트 니콜라스의 유해를 바탕으로 원 모습을 재현해보니 황인종이었다고 밝혔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붉은 옷과 흰 수염의 산타클로스는 31년 코카콜라 광고가 만들어낸 캐릭터다. 산타클로스가 성탄절 전야에 굴뚝으로 들어와 양말에 선물을 주고 간다는 얘기는 게르만족의 풍습과 섞여 만들어졌다. 산타클로스는 원래 모습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천사 같은 존재가 되었다.

지난 5월부터 우리나라에 빈곤 아동을 위한 산타클로스가 등장했다. '가난 대물림을 끊어주자'란 슬로건 아래 시작된 'We Start' 운동이다. 빈곤 아동이 남들과 공평한 교육.복지.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나서자는 취지다. 급여에서 매달 한 계좌(1004원) 이상 자동이체로 떼어내 빈곤 아동을 돕는 '1004(천사) 모금' 계좌가 3만개에 육박하고 1만1000명이 넘는 단체와 개인 후원자가 We Start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일년 내내 빈곤 아동을 돕는 We Start 운동 참여자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산타클로스다.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