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돈 벌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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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즈음 '문화'는 독립된 단어로서보다는 다른 말 뒤에 더 자주 쓰이게 됐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의 한 다큐멘터리는 "인도의 음식문화는 하인문화의 발달과 함께"라고 말한다.언젠가 한 토론자가 '범죄문화'라는 말을 사용한 후 슬쩍 거둬가는 것을 보면 문화가 범죄 뒤에 붙은 것은 적절치 않은 모양이다. 이제 '문화'는 '하인문화','화장실문화'까지는 허용되지만 '범죄문화' '자살문화'에서는 금지되는 단어가 됐다.

'삼국지'다시 쓰려는 작가들

문화라는 말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은 "문화가 뭐 별거냐? 우리 생활이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구태여 무슨 문화, 무슨 문화하며 문화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 점에서 보자면 문화에 대해 우리가 무엇인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 불편함은 말하자면 문화에 대한 콤플렉스일 것이다.

문화 수출도 그렇다. 문화를 앞세워 수출을 거론하는 것은 영화 수출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엄청난 돈을 번 '주라기 공원'이나 최근의 '해리 포터'와 같은 영화를 만들어 돈을 좀 벌어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설령 '주라기 공원'이 한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세계시장을 그처럼 석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성공에는 기득권이 포함된다. 그것은 유명 작가들처럼 나도 『삼국지』를 한번 다시 써서 돈을 좀 벌어보겠다는 생각과 비슷하다. 삼국지가 유명 작가에 의해 다시 쓰여 많이 팔린 것은 좋게 보면 그들의 문학적 기득권이고 나쁘게 보면 이름을 팔아먹는 일이다. 문학정신의 구현이건 기득권이건 간에 '삼국지 현상'은 문학이 자본주의 안에서 변모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상업적 변모를 거친 지 이미 오래다.

요즈음 비디오를 빌려다 보면 두 경우가 확연하게 구별된다. 하나는 체험이 스며 있는 영화들이고 다른 하나는 재미있게 꾸며 팔아먹기로 작정한 영화들이다. 후자는 청소년을 노린다. 그 훈련을 받고 자란 세대들은 영화를 본 후 남는 감동을 싫어한다. 말하자면 다이어트 음식을 선호하듯 영양분이 있는 영화를 피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로 써서 그것을 널리 알려 그 대가를 얻는다는 점에서 항상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을 피한다. 나서서 설치는 작가는 그런 뜻에서 보자면 이미 가짜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다.최근 화가 잭슨 폴락(1912~1956)을 다룬 영화 '폴락'에서 자신을 취재하러온 PD에게 "너는 가짜야"라는 말을 여러 번 되뇐 후 밥상을 뒤엎어 버린 분노에 대해 우리가 감동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심층 때문일 것이다.

문화로 돈을 버는 가장 아픈 경우가 관광이다. 절집의 이곳 저곳을 뒤져보며 부엌에서 밥짓는 스님까지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광객들로부터 돈을 벌어야 한다. 만일 아파트에 사는 내 삶이 그렇게 까발려진다면 나는 돈과 삶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내 삶 전부가 관찰되고 그 대가로 돈을 번다면 그것이 매춘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말이다.

영화도 소설도 의미 담겨야

소설이건 영화이건 예술은 우리에게 먼저 의미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의미가 없는 것은 수출의 의미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의미있는 영화가 돈만 벌겠다는 영화를 이길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언젠가 북녘 땅 어딘가 써놓은 표어를 본 적이 있다. "우리 식대로 살자"였는지 "우리 식대로 산다"였는지, 아마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떠들어 대는 것은 우리 식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그 표어는 우리 식대로 살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문화'의 과용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언어는 있음과 드러냄의 일종의 갈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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