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우증권 ELS 사태, 금융 약자 보호 계기 삼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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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증권사에서 파는 주가연계증권(ELS)을 산 투자자들은 그동안 증권사들의 주가조작 가능성을 의심해왔다. 약정된 조기상환을 하지 않기 위해서 증권사가 의도적으로 주식을 대량 매도해 주가를 떨어뜨린다는 불신이었다. 그런데 이 의심이 사실로 드러났다. 법원은 엊그제 대우증권이 판매한 ELS를 산 투자자들에게 일부 금액을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우증권이 주식을 대량 매도하는 바람에 주가가 떨어졌고 그럼으로써 조기상환 기회가 무산됐다고 판단해서다. 1심인 이번 판결이 최종 판결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있는 만큼 현 단계에서 대우증권에 대한 잘잘못을 섣불리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조기상환하려면 돈을 마련해야 하고 이 때문에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는 증권사의 주장도 터무니없는 건 아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건 국민과 투자자들이 금융사에 대해 갖고 있는 깊은 불신이다. 금융은 신뢰가 생명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금융시스템은 붕괴된다. 불행히도 이 같은 신뢰가 깨지는 일들이 최근 자주 일어나고 있다. 키코(KIKO)와 인사이트펀드가 단적인 예다. 또 보험금을 달라면 이런저런 규정을 들면서 지급을 거절당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소액의 보험료만 내면 평생을 보장해주겠다는 광고에 현혹된 국민들도 많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감독당국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민원이 최근 9년 새 3배 이상 늘었을까.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이러다간 자칫 금융시스템에 큰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렇게 된 책임은 금융사가 더 많이 져야 한다고 본다. 이유야 어떻든 현행 금융시스템에서의 강자는 금융사라서다. 금융상품 구조가 워낙 복잡해 금융사만 믿고서 보험에 가입하거나 투자하는 사람들이 태반 아닌가.

그렇다면 금융 약자인 투자자와 국민을 더 많이 보호하는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최근 미국은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금융소비자보호국을 신설했다. 우리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 별도 기구를 새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금융소비자보호 법률을 신설하는 문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게 좋겠다. 마침 오는 11월 열릴 서울 G20(주요 20개국) 총회의 주요 의제도 금융 소비자 보호인 만큼 논의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