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조<마라도 생각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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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마라도 생각

이상범

남녘 끝 벼랑바위 바람막이 막내였다

억새풀 바다솔도 키를 낮춰 부둥켜 안고

갈매기 역풍을 가눠 허공중에 매어있다.

모함만한 몸집으로 떠 깃발 하나 펄럭이고

무방비의 파도를 견뎌 연일 빗긴 초록풀밭

제비꽃 떨리는 얘기 군락의 뜻 애잔하다.

끈 달아 건사한 목숨 이백년은 채 못돼도

마실 물 비바람에 궁거웠던 노년의 어부

돌미역 한 봉지 건네며 주름진 손 흔든다.

노을 들면 옛생각에 울고 싶고 웃고 싶고

버릴 수 없었던 삶 질기디 질긴 핏줄

흰 등대 경적소리에 섬이 문득 움직였다.

◇시작노트

제주 송악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항공모함 한 척이 떠 있는 듯했고 어찌보면 오죽의 퉁소로도 보이곤 했던 마라도였다.

이 나라의 최남단에 위치한 마라도는 바람과 일기불순의 상징이었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가 1백50여년 전, 비바람이 몰아치면 일주일쯤 육지와 내왕이 끊기고 방에 갇혀 살기가 예사였다는 노년에 든 어부의 말. 바다솔, 억새, 그리고 군락의 제비꽃 전언도 애잔했다.

등대의 경적소리에도 섬이 문득 어디론가 떠나갈 듯싶은 불안정한 마음의 마라도였다.

◇약력

▶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일식권』『가을입문』『별』 등 시조집 15권 출간

▶제8회 중앙시조대상, 제4회 이호우 시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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