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젊음 2題>홍콩에선 카드빚에 허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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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신용카드를 쓸 때마다 '내가 정말 호방하다'는 짜릿함을 느꼈다."

여덟장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2년간 7만홍콩달러(약 1천1백만원)를 빚졌던 홍콩 중원(中文)대학의 2학년 여학생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녀는 "옷이나 화장품·구두 등을 사는데 일주일에 2천홍콩달러를 넘게 쓸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홍콩 젊은이들이 '플라스틱 버블'에 멍들고 있다. 카드 빚 때문에 부모에게 손을 벌리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파산 신청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홍콩 경제일보는 "최근 1년간 47명의 대학생이 카드 빚에 몰려 파산신청을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 말 현재 카드 빚을 90일 이상 갚지 못한 대학생도 1백78명이나 된다.

경기불황으로 카드 빚을 못 갚는 계좌가 3만8천7백75개, 금액으론 11억5천홍콩달러에 이른 가운데 대학 사회도 몸살을 앓는 것이다.

특히 남학생들은 여자 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급식당을 찾거나 옷과 양말·구두 등으로 선물 공세를 펼치다 금방 2만~3만홍콩달러를 빚지기 일쑤다.

엘리트 교육제도를 실시하는 홍콩에서 대학생들은 '모범생'으로 평가받는다. 대학 진학률이 10%대에 그쳐 동년배 9명을 제쳐야 입학할 수 있다.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중원대학의 학보 '다쉐셴(大學線)'은 ▶재학생 중 70% 가량이 카드를 두 장 이상 갖고 있고▶네명 중 한명 꼴로 카드 빚에 몰려 부모에게 신세를 졌다고 밝혔다.

그래서 "금융당국이 나서서 소득자에게만 신용카드 발급을 허용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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