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를 쓰는 것은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었다
시에 있으면 저으기 안심이 된다
머리가 아프다고 시가 나무라지 않는다
머리가 아프다고 시가
해고하지 않는다
시에서는
머리 아픈 것을 화제로
삼을 수 없다
시에 있다고
머리 아픈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는 이해관계에서 독립해 있다)
-박찬일(1956~)'마음에 대한 보고서 2'중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할까. 이 시인은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시를 쓴다며 마음의 보고서를 펼쳐놓는다. 시를 쓰지 않으면 더욱 머리가 아픈 시인들이여. 언제 정신이 밥 먹여주는 세상에서, 언제 시 권하는 사회에서 시를 업(業)으로 삼고 살 수 있을까. 살아갈 수 있을까. 나와 함께, 몇달 동안 시가 있는 아침을 맞고 보낸 고마운 독자여! 시로써 마음이 환해질 때까지, 그 때까지 안녕.
천양희<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