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뮤지컬 ‘코러스 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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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화려한 무대보다 등장인물의 개성을 내세운 뮤지컬 ‘코러스 라인’. 1975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배우였던 바욕 리가 한국 공연의 연출을 맡아 화제다. [나인컬쳐 제공]

뮤지컬 ‘코러스 라인’을 보며 이런 걸 알 수 있었다. 노래·춤·연기 삼박자를 고루 갖춘 뮤지컬 배우를 만들어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고 무대 뒤편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코러스들이 얼마나 긴장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지를. 하지만 이는 머리 속을 맴돈 앙상한 생각일 뿐, 가슴은 허전했다. 감동은커녕 지루할 정도였다.

작품은 1차 오디션을 통과한 열일곱 명 코러스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연출가 앞에 한 줄로 길게 서서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자신의 얘기를 했다. 독백 형식으로 말이다. 얼마간 그렇게 진행되려니 했다. 아니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계속 그랬다.

물론 간간히 노래도 부르고, 몇 명이 함께 춤을 추기도 했지만 기본 골격은 그대로였다. 특별한 무대 전환도 없었고, 별다른 스토리 라인이나 극적 장치도 없었다. 게다가 배우 한 명 한 명이 말하는 에피소드란 게 대단히 미국적 색깔이었다. 아무리 한국 배우들이 열정적인 에너지를 쏟아낸다고 한들 공감대를 얻기엔 역부족이었다.

작품은 1975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그 해 토니상 9개 부문을 휩쓴 명작이다.

당시로선 이렇게 미니멀한 무대가, 드라마 구조를 탈피한 나열식 구성이 ‘컨셉트 뮤지컬’로 분류되며 모던하고 신선하게 평가됐을 게다. 하지만 그건 35년 전 얘기다. 그새 뮤지컬은 훨씬 더 역동적으로 변해왔다. 스토리의 큰 골격인 ‘코러스’와 ‘연출가’의 대결이라는 구조 또한 낡았다. 이를테면 노동조합과 기업가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80년대엔 가슴을 콕콕 찌르겠지만 2010년 현재엔 조금은 진부하게 취급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명작이 한국땅에서 활력을 얻을 요량이었으면 한국적 에피소드를 삽입하거나, 따분한 독백식 구성을 과감히 버렸어야 했다. 하지만 작품의 시계는 1975년 브로드웨이에 멈춘 채 꼼짝 달싹하지 못했다. 새로운 돌파구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까.

◆뮤지컬 ‘코러스 라인’=8월 22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아티움. 6만·8만·10만원. 02-722-8884.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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