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눈으로 쓴 글’ 백 마디 말보다 힘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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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에덴의 동쪽’‘선덕여왕’ 등으로 인기를 끈 탤런트 조민기(44)씨. 그는 프로사진작가다. 2005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올 5월 일본 도쿄에선 첫 해외전 ‘Live A … Frica’도 개최했다.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으며, 모교인 청주대 공연영상학부 교수이기도 하다. 국제기아대책 등 NGO단체들과 연계해 아프리카·동유럽의 어려운 현실을 담은 리얼리즘 현장 사진을 주로 찍고 있다.

조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퓰리처상 사진전’을 찾았다. 보도사진의 백미인 퓰리처상 수상작을 모은 전시다. 전시장 안에 들어선 그는 탄성을 뱉어냈다.

독수리가 소녀를 공격하려는 장면을 포착한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 앞에 선 조민기씨. 혹독한 현실을 찍어야 하는 보도사진의 딜레마를 절감했다고 했다. [조용철 기자]

“제 유년의 기억 속에 전쟁의 공포를 심어준 ‘베트남-전쟁의 테러’(네이팜탄 폭격 이후 달려가는 벌거벗은 소녀) 등 유명한 작품을 직접 보는 느낌이 강렬하네요. 현장의 참혹함과 사진작가의 치열함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많은 사진전을 다녔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 전시도 처음입니다. 사진으로 본 거대한 현대사 도록이랄까요. 교육적 효과도 높아, 방학하면 아이들 데리고 꼭 한번 다시 와야겠는데요.”

전시장을 둘러보던 그가 가장 오래 발길을 멈춘 사진은 케빈 카터의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1994년 수상작)이다. 사진을 찍기보다 소녀를 공격하려는 독수리를 먼저 쫓았어야 한다는 비난 속에, 사진 작가가 자살해 더욱 유명해진 사진이다. 그 자신도 아프리카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노인을 찍은 적이 있죠. 유언처럼, 역시 에이즈 환자인 자식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했어요. 그 마지막 순간에 셔터를 누르면서 ‘건졌다’라는 성취감과 함께 그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파렴치하다는 수치심이 몰려왔어요. 그날 밤 내가 왜, 무엇을 위해 사진을 찍는가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쳤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그 사진을 흑백으로 바꾸고 작은 사이즈로 전환해 저장한 뒤 원본은 파기했습니다. 차마 다시 볼 자신이 없었어요.”

조씨는 그 경험 이후 사진작업에 더욱 신중해졌다고 말했다. “보도 사진의 기본적인 딜레마겠죠. 예컨대 총알이 쏟아지는 장면을 찍는 대신, 총질을 멈추게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하지만 그 한 장의 사진이, 이후 세계인에게 사회적 현실에 대해 관심을 환기시킨 역할을 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는 7일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로 떠난다. 국제기아대책과 함께 벌이고 있는 우물 파주기 프로젝트 때문이다. 그는 아프리카 사진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고 1년 동안 팬들의 기금을 모아, 우물을 파주고 있다. 우간다·코트디부아르에 이어 세 번째 우물이다.

“가끔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냐고 묻는 분들이 있어요. 기술이나 테크닉이 문제가 아니라 왜 찍느냐라는 본질에 답이 있다고 대답합니다. 잘 찍기 위해서는 대상을 더 많이, 더 가까이 바라보는 게 중요하지요. 같은 상황에서도 좋은 사진을 건지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의 차이는 평소 그가 가진 관심과 고민의 차이니까요. 백 마디의 말보다 강력한, ‘눈으로 쓴 글’의 힘을 절감할 수 있는 전시입니다.”

◆퓰리처상 사진전=8월 2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02-2000-6293.

글=양성희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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