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만 지나가면 꼬마들 "기브 미 초콜릿"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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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난 기자는 8·15 해방과 한국전쟁 직후의 혼란과 빈곤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다. 대신 윗세대들의 증언과 소설·영화 등 간접체험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기자에게 일주일 동안의 현지취재로 들여다본 신생독립국 동티모르의 현실은 한국이 신생국가였던 시절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았고, 타임머신을 타고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수도 딜리 한복판의 유엔평화유지군 사령부 앞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대여섯살 남짓한 꼬맹이 예닐곱명이 늘 진을 치고 있다.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외국인이 지나치면 "기브 미 돌라('달러'의 현지발음)"라고 졸라댄다. 운좋게 인심 좋은 사람을 만나 1달러짜리 지폐나 초콜릿, 전투식량 따위의 '수입'을 올린 꼬맹이의 눈망울은 유난히 초롱초롱하다. 기자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미군에게 손을 벌리는 50년대 한국 꼬마의 모습 그대로다.

그처럼 신생국 동티모르는 정부 수립 직후의 한국과 닮은 점이 많다. 유엔 감시 아래 선거를 치르고 제헌의원을 뽑아 나라를 세운 점, 해외로 망명했던 엘리트들이 독립과 함께 귀국해 새 나라의 권력 상층부를 차지한 점 등이 그렇다. 식민지 시절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을 괴롭힌 사람들을 단죄할지 용서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모습도 신생국 공통의 업보처럼 보인다.

나라는 세웠으되 변변한 산업시설 하나 없어 해외원조에 나라 살림을 의지해야 하는 점도 마찬가지다. 사나나 구스마오 초대 대통령이 "국가 발전 모델로 한국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한 것은 이같은 공통점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생국 시절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빈곤 탈출에 성공한 한국의 경험을 동티모르는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딜리에 모여든 많은 외국 언론인들은 "동티모르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도 새 나라의 지도자가 20여년간의 독립투쟁을 통해 국민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정통성과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이란 사실은 어마어마한 자산이다.

99년부터 해외원조로 뭉칫돈과 물자가 들어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관리들의 부패 스캔들이 없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독립을 이뤄낸 동티모르 국민들의 자부심과 높은 교육열도 나라의 장래에 희망을 걸게 한다.

"인권을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인류 양심의 결정"이란 축복 속에 탄생한 동티모르 민주공화국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딜리(동티모르)=예영준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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