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짝! 짝! 짝!" 16강 북돋우는 응원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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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1990년 6월 8일 이탈리아월드컵 개막전(아르헨티나-카메룬)때의 일이다. 기우세페 메차 스타디움에는 7만3천7백80명의 대관중이 모였다. 당시 슈퍼스타 마라도나가 이끌던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에 처녀 출전한 '약체'카메룬을 전혀 부담없이 상대했다.

38세의 노장 로저 밀러가 이끄는 카메룬은 전반을 0-0으로 넘겼다. 후반 들어 카메룬의 카마 비크가 퇴장당했다. 이때부터 운동장에 입장한 이탈리아 관중들은 약팀 카메룬을 일방적으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 응원은 약자를 성원하는 심리도 작용했지만 자국인 이탈리아와 우승을 다툴 아르헨티나를 견제하는 심정도 한몫 했다.

이 광적인 응원이 월드컵사에 영원히 기록될 대이변의 배경 음악이 됐다. 퇴장당한 카마 비크의 친동생인 오맘 비크가 22분 결승골을 터뜨린 것이다. 카메룬은 이후 또 한명이 퇴장 당해 9명이 뛰었지만 이탈리아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보약삼아 '기적'을 일궈냈다.

95년 애틀랜타올림픽 축구 아시아 지역예선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원정간 한국대표팀은 10만이 넘는 대관중이 돌멩이와 음료수 캔 등을 던지는 살벌한 그라운드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악전고투해야 했다.

당시 한국선수들은 경기장에 들어갔을 때 앞이 잘 안보일 정도로 무서웠고, 한국에 못가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공포를 느꼈다. 이 말은 당시 한국선수 중 가장 당당하게 뛰면서 두골을 넣은 최용수가 털어 놓은 것이다.

'브라질도 태국에 가면 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태국의 광적인 응원은 유명하다.

응원은 과연 경기 결과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까? 지난 21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보인 한국의 응원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읽을 수 있는 기회였다. 유교사상이 몸에 밴 우리의 국민 정서는 경기장에서 비교적 얌전한 편이다. 골이 터지면 일어나 환성을 지르고 고작 파도타기 응원을 하는 정도가 우리의 경기장 응원문화다.

잉글랜드 경기를 포함해 최근 열린 평가전 때마다 경기장에는 수많은 관중들이 입장하고 있지만 응원의 열기나 수준은 유럽이나 남미의 축구강국과 비교하면 얌전하기만 하다.

97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때부터 한국축구의 새로운 응원 문화를 창조한 '붉은 악마'의 출현은 한국축구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어왔다. 지친 선수들에게 활기를, 운동장에 입장한 관중들에게는 열기를 불어 넣어주며 경기장 문화를 확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축구장을 가면 붉은 악마의 반대편에 또 하나의 응원단이 응원을 하고 있다. 같은 붉은 응원복을 입고 선수들을 성원하는 것은 좋은데 간혹 응원이 엇박자로 진행돼 효과를 반감시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16강 진입을 위해서는 선수들의 불같은 투지도 필요하지만 '열두번째 국가대표'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응원의 일체감을 바탕으로 상대에게는 심리적 압박감을, 우리 선수들에게는 보약과 같은 에너지원으로서 기능을 해야 한다.

26일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열광적인 응원 모습을 보여주고, 본선까지 그 열정을 그대로 이어간다면 '홈그라운드 월드컵'이라는 일생일대의 호기를 잡은 한국팀은 용기백배해서 뛰어줄 것이다.

<중앙일보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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