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敵시비 일단 피해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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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방부가 2년 주기로 계획된 국방백서의 발간을 무기연기한 것은 가열된 '주적'논쟁을 피해가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예봉 피해간 국방부=국방백서에 기재된 '주적인 북한'이라는 표현을 두고 북한이 삭제를 요구하자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통일부 등 일부 정부 부처는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 수정할 것을 국방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가 정부 일각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강한 반대 의사를 표시, 주적론 논쟁이 확대됐다. 이처럼 상반된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국방부로서는 어느 쪽도 선택하기가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주적론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은 지난 7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 경제협력추진위가 북한의 일방적 불참으로 무산되면서 잠시 잠잠해졌다.

그러자 국방부는 '주적인 북한'이라는 표현을 담은 백서를 이달말께 발간한다고 발표까지 했었다.

그러나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안보특보 등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주도하는 쪽에서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백서에서 주적론을 빼야 한다고 최근 국방부에 재차 요구하면서 국방부는 백서 발간 방침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결국 국방부는 주적론 폐지를 둘러싼 논란을 촉발시키지 않는 차선책으로 백서 발간 자체를 무기 연기키로 한 것이다.

◇왜곡된 주적 논쟁='북한=주적'이라는 표현에 대한 논란은 1995년부터 부각됐다.

94년 국방부는 국방전략을 북한에 국한하지 않고 주변으로 확대하기로 하고 국방백서의 주적 표현을 바꾸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탈냉전 추세에 맞는 국방목표를 세우자는 의도에서였다.

그해 발간된 국방백서는 과거 '적(북한)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라고 돼 있던 국방목표를 '외부의 군사적인 위협과 침략으로부터…'로 바꾸었다.

그러나 북한의 '불바다' 발언에 자극받은 대북한 강경 여론이 일면서 국방부는 95년 백서에서 '현실적인 북한의 군사도발 위협에 대비하여'로 '북한=주적'을 다시 명시했다.

이같은 변화는 당초 국방부가 북한을 포함해 주변국들이 제기할 수 있는 안보위협에 충분히 대처한다는 내용으로 새롭게 국방목표를 정립한 것을 다시 옛날로 되돌린 것을 뜻한다.

군 내부에서는 북한의 주적론 폐지 요구를 수용하자는 주장에 반발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주적 개념을 설정한 것 자체가 국방목표를 축소한다는 의미에서 주적 규정을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국방목표를 정하는 데 있어 북한만을 고려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한반도 주변의 안보위협 요소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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