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문제와 미국의 이중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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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국 선양(瀋陽)의 일본 총영사관에서 체포됐던 김한미양 가족의 미국 망명 의사를 미국 정부가 접수하고도 묵살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민간단체 디펜스 포럼의 수전 숄티 회장은 23일 "지난 8일 한미양 가족의 미국 망명 희망 성명서를 폴라 도브리안스키 국무부 국제문제 담당 차관에게 팩스로 보냈다"고 밝혔다. 숄티 회장의 이같은 주장은 미 국무부가 지난 22일 "미국 체류를 제공하도록 요구받은 적이 없다"고 발표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며 미국이 탈북자 문제를 처리하는 데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외교정책의 주요한 기준의 하나로 인권을 강조해 왔고 이를 이유로 특정 국가에 대한 개입과 봉쇄 등을 강행해 왔다. 그런 미국이 망명 희망 의사를 접수하고도 이를 묵살했다면 국제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을 수밖에 없다. 탈북자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선례를 남길 경우 중·미 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미국 망명 물결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소극적으로만 대응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탈북자 문제는 한·미·일·중 등 관계국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지 오래다. 탈북자들을 인권적 차원에서 배려해야 하지만 난민으로 인정할 경우 대규모 탈북 및 연쇄 망명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이럴 경우 북·중 관계는 물론 미국·일본도 망명 수용 여부를 둘러싸고 복잡한 사태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김한미양 가족 사태는 탈북자 문제가 이제 어느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고 국제 이슈가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일부 의원이 탈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난민 인정과 난민촌 건설 등을 건의한 것은 실효성과 상관없이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도 이중 잣대의 방관자적 입장에서 벗어나 인권 차원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이들을 돕는 행위를 외교적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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