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상 사회봉사부문 수상 지 정 환 신부:장애인 재활원 운영 한국서 42년간 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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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정말로 많은 사람이 함께 땀 흘렸는데…, 그분들에게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23일 호암상 사회봉사부문을 수상한 지정환(71·본명 디디에 세스테벤스·사진)신부는 한국농민과 장애인을 위해 42년을 고스란히 바쳤다. 인종을 뛰어넘는 봉사와 순명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 과정에 그도 '다발성 신경경화증'에 걸렸으나 피눈물나는 재활 노력 끝에 휠체어를, 다시 지팡이를 벗어던져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기도 했다.

그가 남긴 굵직한 업적으로는 1962년 부안에서 농민들과 함께 벌인 간척사업과, 64년에 국내 최초로 설립한 치즈공장, 84년부터 전북 완주에서 운영 중인 중증 장애인을 위한 재활원 무지개가족이 꼽힌다.

"처음 한국에 올 때 걱정은 여기서 오래 살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어요. 그 옛날 한국은 지금같은 모습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일단 이곳에서 오래 사는 것이 목표였으니 계획대로 된 셈이죠. 유럽에서 며칠 지내다 보면 이제 한국사람 다 됐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도 그는 귀화하지 않았다. 귀화에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인의 경우 서류상의 절차만 밟으면 자기 나라 국민으로 받아주지만 한국인은 어디까지나 혈연이 기준이어서 좀처럼 외국인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지개가족 원장인 박남숙씨가 그의 한국 사랑을 대신 들려줬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입니다. 내 고장에 대한 사랑이 대단해요. 한번은 경기도 광주에서 열린 바자에 참석했다가 내려가는데 갑자기 신부님이 박수를 치시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전라북도입니다'라는 안내표지가 보였거든요."

지금 그는 무지개 가족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약물이 아닌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재활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그동안 먹던 약을 다 버려야 한다.

이 재활의 집에선 현재 16명이 재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84년 이후 이곳을 거쳐간 사람은 1백50여명.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가 이곳에서 건강을 되찾아 결혼한 사람만 13명이나 된다. 한 장애인은 12년 만에 휠체어에서 혼자 힘으로 침대로 옮겨가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지팡이에 의지하면 절대로 발전이 없어요. 장애인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도와줘서는 안돼요. 장애 치료에는 장애인 본인의 노력이 절대적입니다."

벨기에 루벵대를 졸업한 지신부는 59년에 한국에 왔다. 봉사· 헌신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죽을 때까지 심심할 여유가 없을 것 같아요. 1800년부터 1930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했던 프랑스인 선교사들이 남긴 각종 자료를 CD롬에 담아 프랑스어만 알면 누구나 접할 수 있도록 정리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계획을 묻는 질문에 지신부는 "산에 갈 생각(산에 묻힌다는 뜻)"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유머가 넘치고 낙천적이어서 무지개 가족엔 늘 웃음이 가득하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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