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일이다. 막 여섯살이 된 딸아이는 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반색하지 않을 엄마가 있을까. 그런데 책 값이 왜 이리 비싼지. 마음 같아서는 아이가 보고 싶다는 책과 내가 골라주려는 책 모두 다 사주고 싶은데 막상 서점에 가면 손에 쥐는 건 한두권뿐, 슬며시 내려놓는 책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어느날 아파트 단지에 책을 20~30% 싸게 파는 할인 서점이 들어섰다. 아이의 생일을 그냥 지나친 데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사주기로 약속한 터라 큰 맘 먹고 서점의 문을 열었다. 오디오 CD 10장에 63권짜리 위인전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22만원 부르는 것을 2만원을 더 깎은 뒤 행여 주인 아저씨의 마음이 변할까 아이 손을 낚아채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애 아빠에게 전화로 물어보고 살 걸 그랬나'.
마음 한구석에서 켕기던 것도 배달된 책을 보며 기뻐 날뛰는 아이를 보자 금세 사라져 버렸다.그런데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이 방 한구석에 자리잡은 커다란 책 박스를 보더니 일그러진 표정으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당신에게 얘기 안해서 화났어? 왜 너무 비싸게 산 것 같아?"
"언제는 상의하고 살았어?"
공연히 삐딱하게 나오는 남편이 못내 야속하고 서운했다. 아이 책 사준 게 뭐 그리 큰 잘못이냐고. 그날 저녁 내내 토닥토닥 말다툼이 계속됐음은 물론이다.
다음날 오후, "택배요"하는 소리와 함께 초인종이 울렸다. 쿵 하며 내려놓은 박스. 각각 42권짜리 전래동화.명작동화 전집이었다. 발신인은 남편. 책을 보고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 문 닫기가 무섭게 휴대전화를 두들겼더니 "아이 크리스마스 선물, 당신도 사줄 줄 몰랐지 뭐. 아이가 신났지? 책 많아져서."
그제야 어제 남편의 얼굴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 부부 사이의 대화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듬해 크리스마스였다. 여전히 좋아하는 책 한권을 선물로 받은 아이가 문득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엄마, 이번 크리스마스엔 아빠랑 안 싸워요?. 그럼 아저씨가 또 책 많이 가져다 줄 텐데…"
웃음이 터졌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말없이 서로 아끼던 주머니를 열었던 그 때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남편과 나에게 전보다 더 큰 믿음과 책임감, 또 끈끈한 정을 가져다 주었다. 앞으로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선 가끔씩 말없이 가슴으로 통하는 크리스마스도 종종 가져볼까 하는 생각에 올해 크리스마스, 아이의 질문엔 "응, 싸울 거야"라고 대답하려 한다.
지혜주(33.주부.서울 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