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씨 대하소설 3부작 1천만부 판매 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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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조정래(59)씨의 대하소설 3부작이 판매 1천만부를 돌파했다. 22일 현재 『태백산맥』(전 10권) 5백50만권, 『아리랑』(전12권) 3백50만권,『한강』(전 10권) 1백20만권 등 1천20여만권이 판매됐다. 국내 작가 중 책을 1천만권 이상 판 사람은 소설가 이문열씨가 유일했었다.

조씨의 기록은 이씨에 이어 두번째지만 순수소설이 안팔리는 시대에 세운 것이라 더욱 뜻깊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같은 기록은 지난달 초 최근작인 『한강』의 판매가 1백만부를 넘어서면서 예고됐다. 게다가 대통령의 3남 김홍걸씨가 구치소에서 『한강』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지난 19일을 전후해 알려지면서 주문이 두 배로 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중순 완간된 『한강』이 두 달이 안돼 1백만부 이상 팔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영상 매체의 영향력 확대 등을 이유로 문학독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기존의 '문학 시장 축소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전작인 『태백산맥』과 『아리랑』이 1백만부 돌파에 걸린 시간을 훨씬 단축했다.

출판계에서는 『한강』을 본격문학 시장의 생존 여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강』마저 팔리지 않는다면 본격 문학 시장은 회복 불가능하리란 전망이었다. 이전작에 비해 작품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은데다 작가 스스로 "3부작 중 가장 소설다운 작품"이라고 공언했었기 때문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태백산맥』이 초베스트셀러가 된 데는 진보적 시각에 대한 갈망 등 지난 연대의 시대분위기가 한몫했었지만 『한강』은 그렇지 않았다"며 "이제 40대 독자를 위시해 독자의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잘 쓰인 작품은 파급력 있게 읽힌다"고 분석했다.

소설이 독자들을 끌어들일 순도 높은 이야기성을 지니고 있다면 독자들은 그에 걸맞게 책을 사서 읽고 주위에 추천한다는 뜻이다. 다시말해 문학 독자의 변화 운운하기 이전에 독자를 끌어들일 문학작품이 나오고 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출판사가 인터넷서점의 『한강』 판매 자료를 종합해 낸 통계를 보면 주소비층인 30~40대 초반(53.9%)외에 20대(37.1%)와 기타(9%)가 46.1%를 차지하고 있어 『한강』이 신규 독자층을 끌어들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조정래씨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던졌다. 그는 "내 작품을 잘 보면 장면 전환이 상당히 빠르고 한 이야기가 한 편의 단편소설처럼 치밀하게 짜여졌다는 걸 알 수 있다"며 "영화와 TV드라마의 빠른 이야기 전개에 길들여진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강』의 성공은 또 서구에선 한물간 장르로 치부되는 대하소설이 한국적 현실에선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하소설의 기본은 역사적 사실을 어떤 입장에서 해석할 것인가이기 때문에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근·현대사를 지닌 한국에 적합한 장르인 것이다.

특히 조씨의 대하소설은 이긴 자들의 기록에서 빠져 있는 부분을, 즉 기록된 역사의 부당성을 인간적인 면을 통해 파헤치는 전통을 세웠다. 역사학과 대하소설의 차이점을 이렇게 명확히 한 것이다.

문학평론가 박철화씨는 "대하소설의 인기는 현대사를 어떻게 봐야 할까라는 대중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근대사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한국의 경우 대하소설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구의 경우 1·2차 세계대전 이후엔 역사의 극적인 반전이 없어 대하소설이 거의 창작되지 않고 있다. 이는 대하소설이 역사적 조건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주화된, 점차 안정돼가는 우리의 경우도 문학의 미래를 대하소설에서 찾을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조정래씨가 세운 대기록이 기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역사적 조건을 넘어설 수 있는, 한국 대하소설의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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