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의혹 담당자 돌연 입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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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 (본지 6월 22일자 18면)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국회 정무위에서 민주당 이성남·신건 의원이 민간인 김모씨를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내사한 사실을 공개한 데 이어 MBC ‘PD수첩’은 지난달 29일 김씨의 증언을 통해 추가 의혹을 폭로했다. 의원들과 ‘PD수첩’에 따르면 공무원들의 공직기강 등을 조사하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2008년 인터넷 ‘다음’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 비방 동영상을 올린 김씨를 불법 조사했다는 것이다. ‘PD수첩’은 김씨가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에게 정치자금을 줬는지 ▶노사모 활동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총리실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불법 내사 의혹이 폭로된 직후 총리실은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김씨에 대한 조사는 ‘대통령에 대한 비방 동영상등을 계속 올리는 사람을 왜 그냥 두느냐’는 여러 건의 제보가 들어와 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보 중엔 김씨가 공무원이라는 내용도 있어 조사를 하다가 민간인으로 확인돼 곧바로 경찰로 넘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김씨가 한때 이광재 당선자의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했다는 내용 등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의혹 키운 총리실=문제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지휘체계다. 총리실은 사태가 불거지자 이 지원관을 인사조치하면서 “이 지원관이 고혈압으로 입원 중이어서 사실 확인이 안 된다”며 “이 지원관이 퇴원하는 대로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달 21일 국회 정무위 회의장에서 TV 카메라에 잡힌 이 지원관은 건강에 큰 이상이 없는 모습이었다. 비판 여론을 피하기 위해 돌연 입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사실상 별도로 일하는 조직이어서 우리도 내용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직제상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장관급)의 지휘를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직보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안에 대해서도 권 실장은 사태가 불거지기 직전에야 이 지원관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1일 정무위에서도 의원들이 이 지원관이 사라진 점을 추궁하자 권 실장은 “잘 모르겠는데… 혼내야 되겠다”고만 답변했다. 이 같은 공직윤리지원관실 체계의 심각성이 드러나자 정운찬 총리는 30일 “조속히 진상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실세 ‘영포회’ 인맥=정치권에선 이 지원관의 배경에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가 공직윤리지원관에 기용된 건 포항·영일 출신 공무원 모임인 ‘영포회’ 회원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지원관은 영덕 출신이지만 초·중·고교를 포항에서 다녀 ‘포항 인맥’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신건 의원이 “이 지원관이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활동 내용을 보고해온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한 일도 있다. 이 비서관 역시 포항 출신이다. 이 때문에 공직기강 조직이 포항 인맥에 장악됐다는 시각도 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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