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한강르네상스 사업 5100억 썼는데 … 야당 반대로 전면 수정 불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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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5기 지방자치가 1일 시작됐다. 야권이 강한 신(新)지방자치 시대다. 지난 4년과 전혀 다른 정치 지형이다. 이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자치단체와 의회의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단체장이 추진하는 사업에 의회가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얘기다. 단체장과 의회 다수 의원의 소속 정당이 달라서다. 서울시의 경우 오세훈 시장은 여당 소속이지만 의회는 야당이 점령했다. 25개 구청도 야당이 지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 시장이 야심 차게 추진해 온 대형 사업들이 표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당면한 서울시 대형 사업의 문제점을 알아보고 이를 통해 향후 자자체와 의회의 바람직한 협력 관계를 모색해 본다.

서해 뱃길을 만들기 위해 4월부터 시작됐던 양화대교의 상판과 교각을 철거하는 서울시의 공사가 민주당 시의원들의 반대로 중단됐다. [김경빈 기자]

30일 오전 서울 양화대교 구조개선 공사 현장. 다리 가운데 120m를 철거하는 공사 때문에 상판의 아스팔트가 벗겨지고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다. 자동차는 지난달 20일부터 양화대교 바로 옆에 설치된 임시 다리로 통행 중이다. 하지만 다리 밑에서는 10여 척의 바지선이 한강에 뜬 가운데 100여 명의 인부가 8대의 크레인을 동원해 교각을 보강하는 공사를 하느라 바쁘다. 폭이 2m인 교각에 거푸집을 씌운 뒤 콘크리트를 투입해 6m로 확장하는 공사다. 다리 위에서는 철거 공사를, 밑에서는 보강하는 공사를 하는 것이다. 이광세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토목부장은 “22일부터 상판 철거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며 “장마철을 앞두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어 교각 보강공사를 마무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 중 하나인 서해뱃길을 만들기 위해 5000t급 크루즈선이 통과할 수 있도록 교각 간격을 40m에서 120m로 넓히는 공사가 4월부터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6·2지방선거에서 서울시 의회의 3분의 2를 차지한 민주당 당선자들이 22일 사업 재검토를 요구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한강을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변모시켜 시민들이 마음껏 즐기도록 하겠다며 서울시가 추진하던 한강르네상스사업이 대폭 축소되거나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강르네상스사업은 절반의 환상과 절반의 은폐 속에 진행돼 왔다”며 “9월부터 시작될 2단계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4년간 ▶한강공원 특화사업 ▶플로팅 아일랜드 ▶한강 교량 접근 개선 ▶자연성 회복 ▶자전거 기반시설 확충 ▶서해뱃길 ▶한강변 건축경관 사업 등에 5100억원을 투입하면서 한강르네상스사업을 추진해 왔다. 민주당 시의원들은 시의회가 개원하면 ‘한강주운(舟運·서해뱃길)사업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시의회 의장으로 내정된 허광태(민주당) 의원은 “한강르네상스사업의 예산 낭비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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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뱃길은 서울 용산과 여의도에서 인천까지 15㎞(폭 50m, 수심 6.5m)의 뱃길을 조성해 유람선이나 화물선이 다니도록 하겠다는 사업이다. 1963년 건설된 양화대교는 교각 간 거리가 40m로 다른 다리의 70~120m보다 좁다. 그래서 교각 두 개를 뜯어내 교각 간 거리를 120m로 늘리고 상판도 철거한 후 120m짜리 아치교로 바꾸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이다. 그러나 22일 시의원 당선자들이 오 시장을 만나 공사의 즉각 중단을 요청하면서 공사는 올스톱됐다. 지금 상황에서 마무리하는 데만 100억원이 더 들어가야 한다. 240억원의 예산 낭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박래학 서울시의원은 “용산에서 상하이까지 20시간 이상 걸리는 크루즈를 운항한다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며 “서울시가 정부의 4대 강 사업에 맞춰 생색내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서울시의원들은 한강의 공공성과 자연성 회복 사업에는 공감한다. 허광태 의원은 “시민들이 한강에 쉽게 접근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한강 접근로 개선이나 자전거 도로 확충 사업 등은 계속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 샛강 등에 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콘크리트로 덮여 있는 구간을 뜯어내 자연 친화형 호안으로 바꾸는 사업도 무리 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하지만 한강 다리 위에 설치된 전망카페나 현재 반포대교 남단에 공사 중인 플로팅 아일랜드 사업 등에 대해서는 겉치레 사업이기 때문에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오 시장은 “한강르네상스사업은 물론 모든 사업을 시의회와 대화와 토론을 거쳐 추진하겠다”며 “한강주운사업도 시의회의 의견을 들어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글=장정훈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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