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人事 혈연·지연 엉켜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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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3일 퇴임하는 중앙인사위원회 김광웅(金光雄)위원장이 정부 조직과 관료사회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중앙인사위의 초대 책임자로 임기(3년)를 마치고 교수로 돌아가는 그는 21일 직원들을 상대로 한 비(非)공개 주례 세미나에서 "공직 인사에 혈연·지연·학연 등이 혈전(血栓:혈관 속에서 굳어진 피)처럼 끼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앙인사위 활동 중 미흡했던 부분들을 솔직히 시인하면서 우리 공직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金위원장은 이날 세미나로 이임식을 대신했다.

◇닫힌 정부=金위원장은 "인턴제도를 활용하고, 고시제를 바꾸는 등 정부와 민간 간에 가로놓인 장벽을 다소 허물었다"며 현 정부의 인사개혁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정부의 문턱을 낮추고 여는 것은 한국 사회의 숙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를 열기 위해서는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데 언론과 정보 공유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일부만 언론과 공유하려다 보니 오보나 왜곡 보도가 나오고, 그때에서야 정정하려는 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성 관리자의 능력과 리더십을 높이기 위해 연구용역을 하려니까,한 젊은 남성 사무관이 '얼마 되지 않는 여성 사무관을 위해 몇천만원의 예산을 쓰느냐'고 반대하고 나섰다." 金위원장은 이같은 예를 들며 "말단 사무관의 사고도 열리지 않았다"면서 "지난 3년 동안 나름대로 바꿔보려 했지만 실망이 크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에 들어온 뒤에야 청와대에 제대로 된 직제가 없는 것을 알았다"며 "이러다 보니 적격성을 따지지 않고 수시로 사람을 바꾸면서, 고무줄같은 원칙없는 인사가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정부 조직은 기계="정부는 거대한 조직이며, 관성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단적인 예를 청와대에서 찾았다.

"청와대에 보고할 때는 A4 용지 석장을 넘지 말도록 제한하거나 글자 크기까지 지적하는 등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형식에 얽매여 있다."

기계적인 움직임이 계급제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그는 "우리 관료사회는 군대와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와 관련, "고시제 개편 때 중앙인사위와 행정자치부가 합의해 마련한 안을 청와대 행정관이 제지해 엉뚱하게 변질시켰다"고 소개했다.

◇계영배(戒盈杯)를 지녀라=金위원장은 "권한을 1백% 쓰면 오만해지고 1백20% 쓰면 남용이 된다"고 말했다. 또 일선 공무원들에게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에 나오는 '계영배(70% 이상 물이 차면 새어나가는 잔)'의 마음을 가지라고 권했다. 그는 끝으로 "인사 심사를 좀더 엄격하게 했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반성하면서 "많은 숙제를 남겨놓고 가는 것 같아 공직자와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이임사를 사내 e-메일을 통해 22일 직원들에게 전달한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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