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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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계가 버린 나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3년 전 소말리아 특집기사에 붙인 제목이다. 1991년 바레 정권이 축출된 후 무정부 상태에서 군벌들간의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소말리아는 전쟁과 난민의 나라로 낙인이 찍혔다. 그동안 1백만명 가량이 전쟁과 기아에 희생됐으며, 수십만명이 난민으로 나라 안팎을 떠돌고 있다. 92년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던 유엔마저 3년 만에 손을 들고 철수했을 정도다.

유엔이 떠나고 외부원조도 끊겼을 때 국제사회는 소말리아의 멸망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경찰도, 법원도, 관청도 없는 폐허에서 서로를 죽이다가 제풀에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소말리아는 아직 살아 있다. 1인당소득은 1백20달러선으로 세계 최하위권이지만 정부가 있고 외부원조도 받는 이웃 나라들 못지않게 버티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소말리아를 지키는 마지막 생명선이 전화라고 분석했다. 국영이던 전화사업은 91년 정권붕괴 이후 중단됐다. 전화선은 끊어지고 교환원도 사라졌다. 영영 사라질 뻔했던 전화는 97년 미국 유학파인 젊은 기업인이 수도 모가디슈와 고향 갈카요에서 전화사업을 시작하면서 소생했다. 미국 친구 등으로부터 조달한 1백만달러로 전화선을 다시 잇기는 빠듯했다. 그러나 뇌물달라, 도장받으라는 정부가 없다 보니 1년 만에 전화를 개통할 수 있었다.

이 사설 전화는 과거 수백·수천만달러의 해외원조가 이루지 못한 변화를 가져왔다. 전화로 거래가 이뤄지면서 우선 시장이 살아났다. 무역과 해외동포들의 송금도 가능해졌다. 의사소통이 활발해지면서 군벌들의 무력충돌이 줄어드는 효과도 나타났다. 아직도 전화선 깔려면 어디선가 총을 든 병사들이 나타나 돈을 요구하지만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부패나 관료주의, 세금보다 훨씬 부담이 덜하다고 한다. 현재 소말리아에는 3개 전화회사에 10만명 안팎의 가입자가 있으며, 최근에는 무선전화와 인터넷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영국의 BBC 방송은 전화사업에서 비롯된 소말리아의 변화를 '조용한 경제혁명'이라고 보도했다.

정부의 전화사업으로 출범했던 KT(옛 한국통신)가 지난주 정부지분을 완전 매각하고 민영화의 길에 접어들었다. 돌이켜보면 KT는 한국 경제의 근대화·산업화와 궤를 같이했다. 민영화된 KT가 21세기형 경제혁명에 밑거름이 되주길 기대한다. 세계가 버린 소말리아조차 살린 통신이기에 KT에 거는 기대는 더욱 크다.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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