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상 증언→골프장 매니저 사진 보고 "맞다" "골프 쳤다" 증언 불구 물증확보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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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홍걸·최성규씨 LA골프회동' 기사의 취재과정은 다음과 같다. 독자 판단에 맡기기 위해 취재기자들의 메모를 근거로 가급적 해석·추측 없이 관련사실만 현지 날짜별로 밝힌다.

◇4월 25일=미주 중앙일보 LA지사 사진부 A기자가 동포사업가인 친구 B씨에게 들었다며 취재팀에 뜻밖의 제보를 해왔다. 다음은 A기자가 들은 B씨의 얘기다.

"오늘 무기거래상을 하는 친척 아저씨 사무실에 들렀다. 그는 대화 도중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최씨'를 자주 언급했다. 통화가 끝난 뒤 '최씨가 누구냐'고 묻자, 아저씨는 '최근 뉴욕으로 도망쳐온 최성규 총경인데 지금 그 사람과 골프를 치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좀 더 확인을 위해 A기자를 B씨에게 보냈다. 하지만 B씨는 "더 이상 얘기하면 아저씨가 다친다"고 입을 닫았다. 이후 B씨는 연락을 끊었다. 취재팀은 B씨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취재원을 찾아 나섰다.

◇27일=이틀간의 수소문 끝에 거물급 무기거래상인 L씨와 겨우 통화할 수 있었다. 최성규씨의 행적을 묻자, 그는 "최씨가 김홍걸씨와 무기거래상 두 명 등과 함께 25일 골프를 쳤다"고 짤막하게 언급하고 전화를 끊었다.

◇29일=이틀간 설득한 끝에 한 호텔 일식집에서 L씨를 만날 수 있었다.다음은 그의 발언 요지다.

"지난 24일 안부전화를 걸어온 후배(무기거래상)에게 '내일 점심하자'고 했더니 후배가 '김홍걸·최성규씨와 골프 약속이 있어 안된다'고 말했다. 팔로스 버디스 쪽으로 간다고 들었다. 후배는 과거정권에서는 무기부품을 판매했으나 현 정권에서 완제품을 취급하는 무기상으로 성장한 사람이다. 그 이름은 밝힐 수 없다."

L씨는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썼다. 헤어질 무렵 "혹시 옷에 녹음기가 들어 있는 것 아니냐"며 취재기자들의 겉옷을 일일이 만질 정도였다.

취재팀은 팔로스 버디스 지역의 몇몇 골프장을 직접 돌아보기로 했다. 첫번째 찾아간 곳에서는 한국인 팀이 다녀간 흔적이 없었다.

두번째로 팔로스 버디스클럽이라는 준회원제 골프장을 취재했다. 클럽 매니저 제프리 영과 부매니저 카일 쇼렌은 경기자명단을 꺼내보면서 "25일 한국인 네명이 쳤다. 거주자 1명, 비거주자 3명이었다"며 "모두 Kim이란 이름으로 티오프했다"고 설명했다.

카일에게 "네명 중 한명이 대통령 아들일 수 있다"고 말하자,그는 "어쩐지 중요한 사람들 같았다. 카드·현금을 합해 거의 1천달러를 써서 기억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홍걸씨의 사진을 꺼내 보이자 카일은 "거주자였고, 일행 중 제일 높은 사람 같았다. 안경 쓰고 키가 큰 편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최성규씨의 사진을 보여주자 이번엔 제프리가 "카드를 결제한 사람으로 비거주자였다"고 얘기했다.

이들은 또 "평소 한국인과 접촉이 잦아 얼굴을 잘 구별할 수 있다"며 몇번이고 자신있게 밝혔다.

취재팀은 카드 결제자의 실명과 다른 비거주자 3명의 이름을 가르쳐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클럽직원들은 "비거주자 이름은 모르고, 카드결제자는 고객보호 차원에서 알려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30일=추가 확인이 어려운 상황에서 취재팀은 제보가 신빙성이 있고 골프장 매니저의 증언도 분명해 기사화했다. 기사화하기 전 홍걸씨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그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보도 직후 홍걸씨의 외가 친척인 LA평통 부회장 김병창씨가 "25일 낮 김홍걸씨가 내 집에서 식사했다"고 골프 회동을 부인했다.

◇5월 1일=오전 10시, 클럽 매니저 제프리는 다른 기자들에게 사진촬영과 녹취까지 허용하면서 사진속의 인물(김홍걸·최성규씨)이 골프를 쳤다고 말했다. 자세한 카드 결제 상황까지 공개했다.

"(최총경의 사진을 가리키면서)이 사람이 처음 제시한 카드(한국소재 은행이 발급)가 잘 결제되지 않았다. 끝내 신용 조회가 안돼 다른 카드를 요구했다. 결제가 늦어지자 나머지 세 명은 클럽하우스 밖에서 기다렸다."

부매니저 카일도 제프리의 말이 대부분 사실이라고 확인해줬다. 다만 카드전표에 결제자의 이름이 'Myoung Hun Kim(김명훈)'으로 돼있었다고 했다.

오후 6시, 김명훈씨가 "내가 그 시간에 골프를 쳤다"며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이 클럽에서 7백23달러를 카드로 결제한 뒤 티오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같이 친 사람이 미국 거주자 S·J·K씨라고 말했다. 취재팀은 S·J·K씨와 차례로 개별 접촉했다. 이들 역시 김명훈씨와 같이 운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3일=무기거래상 L씨를 다시 접촉했다. L씨는 "후배 이름은 말해줄 수 없지만 내 말은 모두 사실"이라며 "누굴 거짓말쟁이로 보느냐"며 화를 냈다.

추가 확인을 위해 골프클럽에 다시 갔다. 클럽 경리부측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카드전표를 직접 보여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예약자 이름이나 연락처 등은 남아있지 않다고 밝혔다.

◇5일=취재팀은 다시 김명훈씨를 만났다. 그는 기자회견 때 보여주지 않았던 카드와 카드전표를 공개했다. 하지만 골프장에 가서 제프리나 카일에게 얼굴을 확인하자는 제안은 거절했다.

◇6일=김명훈씨 일행의 사진을 모두 확보한 취재팀은 제프리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제프리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고 답변했다.

이후에도 취재팀은 추가 제보들을 근거로 김명훈씨 일행의 주장을 여러 각도에서 검증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뒤집을 만한 물증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LA=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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